13년만의 결혼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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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은은한 성가가 울려 퍼졌다. 무릎을 꿇은 신랑 신부를 앞에 두고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하는 혼배 미사가 시작됐다.『이제 비로소 부부로 맺어진 이 두 사람이 겪어야했던 고난의 삶은 이 땅의 아픈 역사가 지나왔던 바로 그 길입니다 긴 세월 영어의 몸인 약혼자를 기다려온 신부에게, 그리고 두 사람이 보여준 위대한 사랑의 승리에 축복을 보냅시다.』
우렁찬 박수와 함께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미동도 않던 신부의 두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28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 대 예배실. 유신의 서슬 퍼런 법정에서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뒤 13년여의 수감생활 끝에 3일 개천절 특사로 석방된 재임동포 유학생 이철씨(40)의 결혼식.
스물 일곱의 대학원생이었던 이씨는 결혼을 5개월여 앞둔 75년 초겨울「간첩」으로 체포됐다.
유신의 폭압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일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 스물 네살의 꽃다운 처녀 민향숙씨(37)도 약혼자인 이씨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들려가 3년 6개월의 형을 살았다. 무기로 감형된 약혼자를 옥에 두고 먼저 풀려난 민씨는 그래도 약혼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길고 긴 옥바라지를 시작했다.
『정권에 도전하는 사람을 사랑해봐야 소용없으니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강요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분명히 믿었어요. 살아서가 아니면 하늘나라에서라도….』
『철씨의 옥바라지를 하며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군사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청춘을, 인생을 박탈당한 채 살고있는지 알게됐어요. 저희 부부는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끝까지 증언할겁니다.』
13년이나 늦어진 결혼식을 보러 일본에서 온 이씨의 형, 민씨의 어머니와 가족·친지들을 보며 오도된 정권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는지를 아프게 느꼈다. <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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