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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부자 틈에서 "갈팡질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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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 서초동 꽃마을 화재현장 이재민 대책에 서울시 행정이 엉뚱하게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민들은 사유지인 이곳에 화재사고 이전처럼 주거용 무허가 비닐 하우스를 다시 원상복구 시키려 하고 있으나 사유지에 무허가건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서울시의 입장과 맞부닥쳐「짓겠다」「못 짓는다」는 승강이가 21일째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도 화재사고 직후에는 원상복구 시킨다는 방향으로 이재민 대책을 세웠다가 정부 쪽에서 제동을 걸어「원상복구 불가」로 전환하게 됐던 것.
화재사고는 지난 9일 오후 7시 31분쯤 발생, 주거용 무허가 비닐 하우스 73동을 태워 3백 77가구의 이재민을 내고 1시간 40여분만인 오후 9시 14분 진화됐었다.
화재사고직후 현장을 들러 관할 서초구청에 도착한 김용래 서울시장은 대책회의를 열고 『겨울을 앞두고 이재민들이 당장 어디로 갈 곳이 없는 만큼 원상복구를 시키는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표시했었다.
김 시장은 이어 다음날인 10일 서울시에서 열리고 있었던 국회 행정위 국감장에서 박실 의원(평민)의「이재민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대책 없는 철거는 않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 말을 받아『그 답변은 그 자리에 원상 복구시키겠다는 얘기냐』고 되물었고 김 시장은『그렇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 같은 대책보고를 받은 정부는「사유권 침해」의 이유를 들어 별도의 대책마련을 지시했고, 시는 이때부터 딜레마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는 그러나 겨울 추위 앞에 이재민들을 방치할 수 없자 이재민 구호차원에서 개포동 88 올림픽 경비단이 쓰던 가 건물에 임시 수용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재민 일부가 원상복구를 끝까지 고집, 이같이 맞서고 있는 상태.
서울시 한 관계자는『정부의 입장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권 보호와 법질서 확립이라는 대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주들 중 이름만 대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인사들의 항의가 거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전언.
이 관계자는『지주 28명중 80%가 법조계 인사들이고 나머지는 공무원·기업가들』이라고 전했다.
『못 가진 자와 가진 자사이의 축소판 싸움 같아요. 같이 좀 살자며 막무가내예요』
현장을 다녀온 한 공무원은 이 같은 분위기를 전달하며 곤경에 빠진 서울시의 입장을 설명했다.
『88 경비단 숙소로 이주시킨다고 해도 그 다음이 문제예요. 또 다른 대책을 요구할 테니 말입니다.』
목동 신시가지를 개발하면서 세입자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준 것이 화근이 돼 그 후로부터 모든 철거지역 세입자 들에게 이주대책을 세워야하는 곤욕을 치렀던 서울시로서는 변태주거용 비닐 하우스에 대한 대책이 또 다른 선례를 남기지 않을까 큰 고민이다.

<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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