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드, 알반 베르크, 타카치…현악 4중주단 줄줄이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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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아르디티 4중주단의 제1바이올리니스트 어빈 아르디티(53)가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80)에게 왜 현악 4중주곡은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불레즈는"현악 4중주는 죽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르디티 4중주단은 구바이둘리나.슈톡하우젠.쿠르탁 등 현대 작곡가들에게 4중주를 위촉해 초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로노스.메리디안.에델.플룩스.브로드스키.켈러.발라네스쿠 등 많은 4중주단들이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로 활동 중이다.

현악 4중주의 계절이다. 5~6월 줄리아드(미국), 알반 베르크(독일), 타카치(헝가리) 등 세계 정상급 4중주단이 한국을 찾는다. 현악 4중주는 '음악감상의 종착역'으로 통한다. 서양음악사에서 작곡가들이 가장 선호했던 장르다. 화려하진 않지만 군더더기 없이 음악 세계의 진수를 펼칠 수 있는 결정체다.

현악 4중주단은 연습 도중 음악적인 문제로 서로 다투기도 한다. 금방 헤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오더본 4중주단처럼 한 명의 단원이 다른 멤버들의 집과 악기를 압류처분해달라며 법정 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얼굴을 붉히기가 싫어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음악적 발전은 불가능하다. 단점을 지적할 때 직접적인 대화를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령 첼리스트가 제1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렇게 말한다."우리의 존경하는 제2 바이올리니스트에게 15마디부터는 급히 서두르지 않도록 부탁해 주시겠습니까."

창단 26년째를 맞는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단원 중 3명이 창단 멤버였다. 비올리스트 토카스 카쿠스카가 갑자기 타계하자 그의 제자인 이자벨 카리지우스를 영입했다. 이들은 1년에 6개월만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고 나머지는 따로 독주와 교수 활동을 한다. 제1바이올리니스트 귄터 피클러는 지휘자로도 활동 중이다. 줄리아드 4중주단의 최고참 단원은 69년에 합류한 비올리스트 새뮤얼 로즈. 현재의 멤버들도 함께 연주한 지 10년이 됐다.

불레즈는 여지껏 현악 4중주는 한 곡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아르디티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내가 현악 4중주가 죽었다고 한 말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어빈, 미안해. 내가 틀렸어."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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