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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검 돌진한 굴삭기 기사, 모범수로 석달 일찍 가석방

중앙일보

입력

30일 오전 10시 전남 해남교도소에서 석 달 일찍 가석방된 굴삭기 기사 정모(47·검정 옷)씨가 교도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 정씨 친구]

30일 오전 10시 전남 해남교도소에서 석 달 일찍 가석방된 굴삭기 기사 정모(47·검정 옷)씨가 교도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 정씨 친구]

30일 오전 10시 전남 해남교도소에서 석 달 일찍 가석방된 굴삭기 기사 정모(47·검정 옷)씨가 교도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 정씨 친구]

30일 오전 10시 전남 해남교도소에서 석 달 일찍 가석방된 굴삭기 기사 정모(47·검정 옷)씨가 교도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 정씨 친구]

1년9개월 만에 출소한 '대검 돌진' 굴삭기 기사 

"(출소하니) 홀가분합니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일하면서 살아야죠."
30일 오전 10시 전남 해남군 옥천면 해남교도소. 정문이 열리자 교도소 안에서 형기를 마친 수형자 6명이 나왔다. 검정 상·하의에 흰색 고무신을 신은 정모(47)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정씨는 2016년 11월 1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돌진한 '굴삭기 기사'다. 그는 시설물을 부수고 이를 말리던 방호원을 다치게 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정 농단' 최순실에 분노해 대검 돌진 #1년9개월 만에 전남 해남교도소서 출소 #모금 및 탄원 참여한 시민들에 "감사" #"월급제 기사 하며 정상적으로 살 터"

항소심에서 기각된 그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1심대로 징역 2년이 최종 확정됐다. 항소심까지 서울구치소에서 생활하던 정씨는 지난해 7월 전북 정읍교도소에 이어 지난 1월 해남교도소로 이감됐다. 만기는 오는 10월이지만, 모범수로 인정돼 석 달 일찍 가석방됐다. 구속 후 1년 9개월 만이다.

정모(47)씨가 지난해 11월 1일 오전 굴삭기를 몰고 대검 청사로 돌진해 시설물을 파손시켰다. 경찰과 관계자들이 굴삭기를 치우고 있다. [중앙포토]

정모(47)씨가 지난해 11월 1일 오전 굴삭기를 몰고 대검 청사로 돌진해 시설물을 파손시켰다. 경찰과 관계자들이 굴삭기를 치우고 있다. [중앙포토]

"국민은 하루하루 목숨 걸고 일하는데 최순실은…"

정씨는 교도소 앞에서 기다리던 박모(47)씨 등 고향 친구 2명을 보자 반갑게 악수를 했다. 박씨 등은 이날 출소하는 정씨를 마중하러 전북 전주에서 승용차를 몰고 해남까지 2시간30분 거리를 달려왔다. 친구들은 미리 준비한 새 옷으로 정씨의 출소복을 갈아입혔다.

정씨는 2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굴삭기 돌진 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하루하루 목숨 걸고 일하는데 최순실 같은 사람들은 법을 위반해도 호의호식하며 사는 걸 보고 억울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를 말리려다 다친 분(방호원)에게는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당초 정씨가 공격하려 한 대상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였다. 애초 그는 사건 전날까지 전북 순창에서 고교 동창이 하는 축사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2016년 10월 31일 독일로 잠적한 지 두 달 만에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씨를 보고 분한 마음에 이튿날 상경했다.

독일에 머물다 지난 2016년 10월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최순실씨 모습. [중앙포토]

독일에 머물다 지난 2016년 10월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최순실씨 모습. [중앙포토]

"방법은 잘못, 분노엔 공감"…굴삭기 열사로 불린 이유 

당시 현장에서 붙잡힌 정씨는 경찰에서 "(범행) 전날 최순실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국민들께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을 도와주러 왔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당시 최씨의 국정 농단에 분개한 국민 일부는 정씨를 '굴삭기(포클레인) 열사'라 부르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하지만 현행법을 어긴 정씨는 구속됐고, 지난해 3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정씨가 선고를 받은 법정과 같은 층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렸고,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굴삭기를 몰아 중장비 경력만 20년이 넘는 정씨는 이력만 보면 평범한 시민에 가깝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난 그는 3남3녀 중 다섯째다. 큰형(49)부터 막내(45)까지 삼형제가 굴삭기 기사가 된 것도 정씨가 굴삭기 기술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최순실씨가 지난해 5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각각 이동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최순실씨가 지난해 5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각각 이동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평화적인 촛불집회 보며 '무력 저항' 반성" 

당시 구속된 정씨를 돕기 위해 1500만원이 모였고, 4000여 명이 '정씨를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정씨의 행동은 부적절했지만, 그가 표출한 분노에는 공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정씨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많은 분들이 애써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후원단체 등 도움 주신 분들을 찾아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정씨가 대검에 돌진할 때 몬 굴삭기는 현재 그의 고향 임실에 있다. 그가 구속돼 납부하지 못한 굴삭기 할부금은 그의 막내 동생이 대신 갚아 왔다. "형이 굴삭기라도 있으면 뭐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동생의 말이다. 정씨는 "광화문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이뤄진 모습을 보며 무력으로 저항한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출소 후 계획에 대해선 "배운 게 장비다. 월급제 (굴삭기) 기사를 해보려 한다"고 했다.

지난해 3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김범석 기자

지난해 3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김범석 기자

해남=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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