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죽이려 악소문(양정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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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정감사기간동안 부실기업문제를 부실하게 다뤘다고 도처에서 지적을 받은 재무위의 야당의원들은 감사 마지막날인 24일 그 동안의 실점을 만회하려는 듯 11명의 증인을 한꺼번에 출석시켜 종횡무진질의를 폈으나 벼락치기로 하는 일인지라 결국 소화불량, 깔끔히 마무리짓지 못하고 종료했다.
이날 의원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질의를 신청하는 바람에 질의시간을 20분으로 제한, 한정된 시간 때문에 핵심문제에는 접근도 못하고 도중하차하면서 속사포식 일방적인 질문만 퍼부어 대는 등 미숙함을 연출.
이날 피해자 측 입장에서 증인으로 나선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과 윤석민 전 대한선주회장은 답변과정에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억울했던 말」들을 비장하게 털어놓으며 시정을 호소.
특히 윤 전 대한선주 회장이 『대한선수의 해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 전대통령의 지시로 하수인들이 수행한 정치권력비리』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이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인용 전 재무장관 등에게 협박당해 기업을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야당의원들은 부실기업정리를 추궁키 위해 평민당 측이 내놓은 부실기업정리무효결의안과 민주당 측의 국정조사권발동결의안을 반드시 관철시키기로 방침을 확정.
그러나 이를 전해들은 정순덕 위원장은 『국제그룹 인수문제 등은 현재 재판 중이므로 국회에서 결의안으로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간사회의에 맡겨줄 것을 부탁.
속개된 저녁회의에서 심창구·서정화 의원 등 민정당 의원들이 질의를 길게 하여 자정을 넘기려했으나 야당의원들이 독촉하여 오후 11시20분 증언 청취를 종료, 이때 홍영기 의원(평민)이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미리 준비한 결의안을 읽어 내려가자 정위원장은 『불법이다』며 정회를 선포, 여·야 의원간에 몸싸움을 전개.
정위원장이 퇴장한 가운데 야3당은 조부영 의원(공화)을 임시위원장으로 추천하여 ▲부실기업정리무효 ▲국회부실기업정리조사특위구성 ▲김 전 부총리 등 5명 고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과 국정조사권발동 결의안을 일방적 상정
결국 여야의원의 심한 고함과 몸싸움 끝에 조의원이 손바닥으로 단상을 두드리며 결의안 통과를 선포했으나 국회법상 이 결의가 유효할지 의문시 돼 결국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날 회의에 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춘원 의원(평민)=부실기업 정리구상은 누가 제일먼저 했나.
▲김만제 전 부총리=내가 계획을 세우고 입안했다.
▲임의원=대통령과 의논했나.
▲김 전부총리=상의도 하고 보고도 했다.
▲임의원=부실기업 정리와 관련한 한은특융 입안은 누가 했나.
▲최창낙 전 한은총재=김만제 장관과 협의했고 한은 안은 내가 만들었다.
▲임의원=대한선주 인수는 누구로부터 협의 받았나.
▲조중훈 한진 회장=당시 실무진이 최창낙 총재로부터 협의 받은 걸로 안다. 부채탕감 조건을 들은 후 나는 실무자를 통해 세 번에 걸쳐 거절했었다.
▲김동규(민정) 의원=국제그룹을 해체하며 연합철강을 동국제강으로 넘기기 전에 권철현씨를 만나 연합철강을 맡아 달라고 제의한 적이 있느냐.
▲김 전부총리=타진한 적은 있다.
▲김의원=당시 왜 권씨에게 연합철강을 되돌려주지 않았느냐.
▲김 전부총리=국제그룹의 하나인 국제종합기계를 동국 측이 함께 인수하기로 양해해 조건이 좋은 동국에 넘겼다.
▲조부영 의원(공화)=부실기업을 만든 기업인에게 왜 책임을 지우지 않았는가.
▲김 전부총리=파산을 시킬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서상목 의원(민정)=부실기업 정리에 정부개입이 불가피했던 점을 설명하라. 또 비공개 이유를 밝히라. 부실기업정리 책임은 청와대·재무부·해당 은행 중 누구냐.
▲김 전부총리=85년 부실기업정리 당시 6개 시중은행의 자산은 17조원으로 부실기업으로 말미암아 안고있는 부채 7조∼8조여원을 일시에 털어 버린다면 금융기관은 다 망해버리게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산을 시키지 못하고 제3자 인수를 시도했다.
▲서의원=국제그룹을 제3자에게 인수시킨 배경은 무엇인가.
▲이필선 전 제일은행장=84년말 당시 국제그룹의 소생을 위해 1천5백억원을 긴급 대출했었다. 그러나 국제 측의 사옥건설, 해운대 하이야트호텔 건설, 호주제련소 건설 등 무리한 사업계획을 벌여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도는 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에 제3자로 하여금 인수토록 해달라고 건의했었다.
▲서의원=양정모 전 국제회장은 방만한 경영이 부실의 원인이라고 은행장이 증언하는데 납득할 수 있는가.
▲양 전 국제회장=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국제그룹은 당시 10대기업의 하나였다.
단기적으로 자금사정이 나빴지 회사가 부실하지는 않았다. 뭐가 목적이 있어 회사를 죽이려고 악 소문을 퍼뜨려 제2금융권의 어음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서의원=윤 전 대한선주회장도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윤씨=당시 세계해운은 최악의 상태였다. 여기에다 특별세무조사가 나와 4개월간을 온통 뒤지는 바람에 화주들이 다 다른 회사로 가버렸다.
▲서의원=그렇다면 책임이 없다는 얘기냐.
▲윤씨=책임이 없지는 않지만 범양상선을 지원해준 것에 비하면 대한선주는 그 절반도 지원 받지 못했다.
▲김정수 의원(민주)=양 전 국제회장은 5공권력의 상층부에 괘심 죄로 걸려 그룹이 해체됐다고 보느냐.
▲양 전회장=나는 보통으로 처신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결정되던 날 당시 은행장이 불러 나가 보니 은행계획대로 그룹을 해체시키지 않으면 다칠 것이니 알아서 하라고 협박했다.
▲이 전 제일은행장=국제그룹으로부터 자구계획을 보고 받고 1천5백억원 이상 지원했으나 방만한 경영으로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
▲김문원 의원(공화)=김 전부총리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며 전 전대통령과 몇 번이나 만났는가.
▲김 전부총리=수십번 만났다. 전 전대통령은 이 문제만 가지고 가면 짜증을 내고 장관이 책임지고 정리하라고 했다.
▲최봉구 의원(평민)=윤 전 대한선주회장이 기업을 인수시키면서 3천6백만 달러를 유출시킨 사실을 외환은행 감사 때 확인했는데 사실인가.
▲주병국 전 외환은행장=2백70억원이 사외로 유출된 것을 확인했으나 구체적인 확증이 없어 고발치 못했다.
▲윤씨=그 같은 허위사실을 날조한 사람을 고발하겠다.
대한선주를 해체토록 한 것은 전 전대통령의 지시였다.
전두환씨가 인수회사로부터 1천억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며 나는 액수가 그 이상이라고 확신한다. 8백명의 무술경찰이 둘러싼 가운데 주주총회를 열어 날치기로 경영권을 탈취해갔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정인용 전 재무장관이 협박하여 포기각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장 전 안기부장은 나를 안기부지하실로 끌고 가 협박했으며 전씨의 재산관리인격인 은행감독원장이 평생 먹을 것을 마련해주겠다는 회유도 있었다.
▲양 전회장=너무 억울해 증언할 기분도, 용기도 안 난다.
4만5천명의 종업원을 가진 대회사를 어떻게 발표 1시간 전에 은행장이 해체를 결심하여 발표할 수 있겠는가.
실사과정에서 국제주식이 1원에 넘어갔다.
국제그룹의 부채비율이 8백%로 몇천%의 부채 비율을 가진 기업은 놓아두고 국제만 죽인 이유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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