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문재인 정부의 규제개혁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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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규제는 간섭이다. 그것은 정부의 민간 통제다. 공무원의 합법적 참견 수단이다. 규제의 반대쪽은 자율이다. 자율은 혁신을 생산한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의 진단은 흥미롭다. “LPGA 박인비와 한국 선수들,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흔들고 성취한 것은 규제의 영역 밖에 있었던 덕분이다.” 진념은 “정부가 나서 지원한다고 참견했으면 쓸데없는 규제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했다. 규제는 표준화로 길들인다. 그것은 혁신의 도전정신에 제동을 건다.

규제는 간섭과 권력이다 #경제 흥행은 규제 없애고 #리더십의 용기·신념 필요 #문 대통령, 혁신성장 이루려면 #규제 담당 부서 폐지했던 #‘김용환 노하우’를 배워야

규제 장벽은 높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외침은 절실하다. “상의 회장 5년 동안 규제를 풀어야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정부에 40차례나 건의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업 규제 법안 800여 개가 쏟아졌다.” 규제 타파는 일자리다. 그 때문에 트럼프의 미국, 아베의 일본 경제는 규제 혁파에 주력한다. 하지만 한국은 역주행이다. 서비스업, 미래 신산업의 일자리는 규제에 막혀 있다.

규제는 넘쳐난다. 기업 쪽만 많은 게 아니다. 그 뿌리는 사회 깊숙이 스며든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문제 제기는 실감 난다. 그가 지적한 사례는 ‘초·중·고교 내 커피 자판기 설치 금지’(법 개정안)다. 김병준은 그것을 ‘과잉 국가주의’로 지적한다. 그것은 선생님들의 자율과 소명감에 상처를 낸다. 선생님들은 알아서 학생들 건강을 챙겨준다. 커피는 이미 학생공간에서 퇴출돼 있다. 거기에 이번에 자판기 규제를 얹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타파 전선을 구축했다. 혁신성장은 문재인 경제의 한 축이다. 핵심이 규제 개혁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인상적이다. “의료기기들이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활용되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가”(19일 규제혁신 행사).

그 현장의 규제 혁파 의지는 선명했다. 행사 뒤 반응은 대체로 신중하다. 그런 이벤트는 과거 정권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규제는 풀리지 않았다. 그것은 문 대통령의 지적대로 “의료기기는 개발보다 허가·기술평가를 받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식약처·보건의료연구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저마다 규율을 짜놓는다. 의료기기 인허가 과정은 피곤하다.

규제는 난공불락 상태다. 방어력은 단단하다. 그 속에 묵시적 카르텔이 있다. 관료·국회의원·시민단체들이 얽혀서 기득권을 공유한다. 그 집단이 문 대통령이 말한 ‘누구’다. ‘무엇’은 기득권으로 얻는 위세와 이익이다. 규제를 풀자는 공무원도 많다. 하지만 카르텔의 분위기는 그런 사명감을 위축시킨다. 규제에 내성이 생겨났다. 과거 정권 때 저조한 실적 탓이다. ‘전봇대 뽑기’(이명박), ‘손톱 밑 가시 빼기’(박근혜)는 구호에서 그쳤다.

안전사고가 나면 강해진다. 카르텔의 저항은 교묘해진다. 그들은 사고를 규제완화 탓으로 몰고 간다. 현 정부 지지의 시민단체, 교수들은 규제 고수 쪽이다.

규제는 권력이다. 인허가는 공직자들의 무기다. 김용환 전 재무장관의 경험은 정책 상상력을 준다. “관료는 자신의 규제 권한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규제를 깨려면 그런 생리에 익숙해야 한다.” 그의 관료 명성은 박정희 시대에 두드려졌다. 그는 김대중 정권 초기 IMF 환란 탈출의 공로자다. DJ는 “뛰어난 정책 능력을 지녔다”고 그를 평가했다.

김용환이 생전에 제시한 노하우는 절묘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재무장관 시절이다. 재무부에 외환관리 담당과가 있었다. 해외여행 때 갖고 나갈 달러의 한도는 사전허가제였다. 그 절차는 까다로웠다. 김용환은 그것을 불필요한 규제, 업무 낭비로 규정했다. 관련 업무를 은행에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규제는 없어지지 않았다. 공직 후배인 담당 국·과장들이 묵살해서다. “특단의 비상수단을 썼다. 담당 국장을 다른 부서로 보냈는데 그 아래 과장이 규제를 고집했다. 그래서 아예 담당 부서를 폐지했다. 그랬더니 규제가 없어지고 풀렸다.” 규제는 중독성이 강하다. 민간인을 부르고 퇴짜놓는 쾌감은 달콤하다. 김용환의 노하우는 독보적이다. 그의 사례는 의료기기 규제 타파에 전수돼야 한다.

문 대통령의 규제 개혁 데뷔 무대는 강렬했다. 그것은 규제 도전의 첫 편이다. 규제 문제는 단기적이면서 장기 게임이다. 혁신성장은 일단 궤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병행해야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병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동시 성취와 만족은 힘들다. 경제 성패는 순위 결정의 디테일에서 결판난다. 국정은 우선순위를 매기는 작업이다. 거기에서 정권의 역량 차이가 드러난다. 그 부분에 지도력의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 규제 타파는 경제 흥행을 보장한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