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마음] "도시락, 아빠가 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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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벌써 5월 4일…야단났네.'

날짜가 가는 줄도 모르고 바깥일에 바삐 살던 아빠들 중에 5월 4일을 떠올리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이날이 24시간도 안 남았기 때문. 선물은 오늘 저녁이라도 적당히 해결하면 되지만 별난 이벤트를 학수고대하던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선 너무 촉박한 시간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열리는 특별 공연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의 외식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터넷을 뒤지든 전화 다이얼을 누르든 인기 있는 행사는 벌써 예약이 끝나 소용없는 짓이다.

회사원 이상민(38.서울 중랑구 군자동)씨는 며칠 서둘렀는데도 허탕을 쳤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 태영이와 네 살짜리 딸 은서에게 무척 미안했다. 여러 가지를 궁리한 끝에 평소에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어린이날은 아빠가 요리하는 날'로 해 엄마처럼 앞치마를 두르기로 한 것. 군대에서 라면을 끓여먹던 실력이면 기본은 탄탄한 셈. 이왕 요리를 할 바엔 엄마 표보다 맛있다는 아이들의 칭찬을 듣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메뉴는 아이들은 좋아하는데 엄마가 평소 안 해주는 소시지.햄.베이컨 등을 주재료로 정했다.

일단 핫도그를 염두에 두고 장보러 나간 이씨는 시중에서 판매 중인 소시지 등 육가공식품에 깜짝 놀랐다. 값싸고 품질이 낮은 기존의 이미지와 달리 고가.고품질의 상품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것. 소시지의 경우만 해도 국내산 돼지고기를 사용한 청정원의 참작 순살 바비큐 소시지(350g짜리 4050원), 로즈마린 등 고급 허브향이 들어간 CJ의 프레시안 허브 후랑크(165g짜리 2180원)가 있는가 하면 쇠고기만으로 만든 존쿡의 올 비프 핫도그(300g짜리 3300원)까지 등장했다.

막상 요리를 시작하니 태영이랑 은서도 앞치마를 두르고 아빠 돕기(?)에 나섰다. 두 아이의 손을 타면서 음식 모양이 엉망이 됐지만 화가 나기보다는 일을 핑계로 자주 놀아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밥알이 사방으로 흩어져 주방도 금방 난장판으로 변했지만 옆에서 도와주던 아내 홍정아씨 역시 소리 없이 웃음만 짓고 있다.

"아빠가 만든 핫도그가 학교 앞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어요."(태영), "샌드위치 실력은 나보다 훨씬 낫네요."(아내) , "주먹밥 만들기가 제일 재미있어요."(은서)

늑장을 부리다가 어린이날 오갈 데 없어 결정한 '아빠의 앞치마 두르기'였지만 결과는 그동안의 감점 생활을 단번에 해소한 대성공. 이씨는 매년 어린이날은 아빠가 요리하는 날로 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지상 기자

*** 영 자신 없을 땐…반조리 식품 활용범

"앞치마를 두르는 건 죽기보다 싫다."

"부엌칼을 잡는 게 정말 무섭다."

요리는 할 엄두도 못 내고 설령 하더라도 자신이 없어 이런저런 핑계로 둘러대는 아빠들이 많다. 그러나 요즘은 크게 걱정할 게 없다. 동네 수퍼마켓의 반찬가게나 테이크 아웃 전문점을 활용하면 멋지게 해결할 수 있다. 라면이라도 끓여본 실력이라면 반가공 조리 음식을 사다가 살짝 추가 조리해 상을 차리고, 주방에 들어간 경험이 전혀 없는 왕초보라도 완전 조리 음식을 사다가 그릇만 바꿔 담아 얼렁뚱땅 차리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초밥의 경우엔 대형 수퍼마켓에 초밥 성형기에 초밥 양념.초밥용 횟감.유부.고추냉이(와사비)까지 세트로 구성된 상품이 있다. 밥만 지으면 '미스터 초밥왕'으로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요리하는 재주가 없다면 아이들과 아내가 원하는 메뉴를 공략하는 방법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잘 안 해주는 인스턴트 요리로 점수를 따고, 아내에게는 재료비가 비싸거나 손이 많이 가는 요리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할인점 식품코너에 가면 캘리포니아 롤이나 닭 강정 등이 싼값에 나와 있다. 예쁜 도시락 통까지 장만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피크닉 도시락도 쌀 수 있다. 특급호텔 일식당이나 양식 레스토랑에선 새우튀김.장어구이로 만든 도시락이나 샐러드.누들 메뉴로 채운 세트메뉴도 판매 중이다. 따뜻한 국물요리나 시원한 음료까지 함께 챙겨준다. 늦잠 자는 아내 몰래 승용차를 몰고 잠시 다녀와도 트렁크 뒤에는 아빠가 후다닥 차려낼 수 있는 어린이날 파티 요리나 소풍 도시락이 준비된다.

◆ 튀기지 않은 미니핫도그…기름기 쏙 빼 담백

■ 재료=핫도그 소시지 3개, 핫케이크 가루 200g, 계란 1개, 우유 100㎖, 케첩.겨자 소스 적당량, 나무 꼬치 9개

■ 만드는 법=끓는 물에 핫도그 소시지를 넣고 1분간 데친 후 꺼내 3등분해 나무 꼬치에 꽂는다. 핫케이크 가루는 계란과 우유를 넣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다.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뒤 핫케이크 반죽을 얇게 펴서 속이 잘 익도록 구워낸다. 구워낸 핫케이크를 소시지 크기에 맞게 길게 자른 뒤 소시지를 올리고 김밥처럼 돌돌 말아준다. 그 위에 겨자 소스와 케첩을 발라준다.

◆ 살라미 햄 샌드위치…짭잘 ! 매콤! 상큼 !

■ 재료=곡물 식빵 6장, 얇게 썬 살라미 소시지 18장, 슬라이스 햄 6장, 양상추 3잎, 토마토 1개, 슬라이스 치즈 3장, 양파 1개, 버터.겨자 소스.피클 약간씩

■ 만드는 법=식빵을 토스터기에 구운 뒤 얇게 버터를 바른다. 토마토와 양파는 0.7㎝ 굵기로 둥글게 썬다. 양상추는 손으로 알맞게 찢고 피클도 얇게 썬다. 식빵 위에 양상추를 깔고 양파.슬라이스 치즈.토마토를 순서대로 올린다. 그 위에 살라미 소시지와 슬라이스 햄을 골고루 얹고 겨자 소스를 뿌린 후 식빵으로 덮는다.

◆ 시금치 베이컨 주먹밥…한 입에 쏘~옥

■ 재료=밥 2공기, 시금치 80g, 베이컨 10장, 검은깨 2큰술, 소금.참기름 약간씩

■ 만드는 법=시금치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쳐 찬물로 헹궈주고 물기를 꼭 짠 뒤 잘게 썬다. 베이컨을 잘게 썰어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바삭하게 구운 뒤 종이 행주로 기름을 걷어낸다. 밥에 시금치, 베이컨, 검은깨, 소금, 참기름을 넣고 잘 섞는다. 밥을 먹기 좋은 크기로 둥글게 쥐어 주먹밥을 만든다. 랩을 이용하면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도 주먹밥을 쉽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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