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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라이트 美 前국무 회고록]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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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이자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현직 최고위급 인사였던 매들린 올브라이트(66)여사의 회고록이 16일 발행됐다.

세 자녀를 키우는 이혼녀로서의 개인적 고통과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역정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북한 문제를 시작으로 그녀의 자서전 내용을 세번에 걸쳐 간추린다.

◇눈앞에서 사라진 북.미 정상회담=그녀는 자서전에서 "내가 평양을 방문하고, 이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까지 추진했던 2000년이 북.미 관계를 풀 수 있었던 결정적 호기였다"고 언급한 뒤 "개표 파동 등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뜻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으로 정상회담이 무산되고, 이어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 북.미 관계가 오히려 악화된 점은 두고두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클린턴의 방북과 관련, 미국 내에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이에 개의치 않았고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보다도 더 방북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밝혔다.

심지어 클린턴과 대선 이후에도 막바지에 다다른 미사일 협상을 마무리지으려 자신을 독려했으나 팔레스타인 문제가 갑자기 불거지고, 역사상 유례없는 대선 개표 논란에 휘말려 시간을 놓쳤다고 했다.

결국 클린턴의 방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자 당시 행정부는 정권 교체 이전에 김정일 위원장을 다급하게 초청하려 했으나 국제 관례에 어긋나는 이런 제안을 북한은 예상대로 완곡히 거절했다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가 북한을 설득할 마지막 기회였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동안 추진했던 북.미 정상회담 건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느냐"고 의사를 타진했으나 "그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순전히 당신이 했던 것"이라며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도 그녀는 털어놓았다.

◇김정일은 대화 가능한 상대=2000년 10월 평양에서 만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상도 소상히 적었다.

당시 金위원장은 분명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공산주의 체제나 자신의 권한에 대한 급속한 변화를 우려한 듯 서구식이나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고 스웨덴.태국식 국가 체제를 검토 중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金위원장이 예상과 달리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훌륭한 대화 상대자이자 대단히 실용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으며 "냉전시대와 달리 이제 한반도 안정에 미군이 기여한다는 金위원장의 발언 또한 예상 밖이었다고 전했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관련, 金위원장은 "통신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계속 추궁하자 "물론 자위권의 강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金위원장은 또 "북.미 관계 개선을 적극 희망하지만 군부가 정확히 50대 50으로 나뉘어 있고 또 군부 측 일부 인사는 신무기 개발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상태"라고 그녀에게 말하기도 했다.

평양 방문의 일화로서 그녀는 金위원장이 1차 회담 때 통역사의 영어 수준을 그 통역사를 통해 나에게 물어와 매우 당혹했으며, 金위원장이 자신이 안무 지도를 맡았다고 자랑하면서 그녀에게 보여줬던 마술 댄스에서 한 여성 댄서가 실수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그녀는 영원히 춤을 못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최근 악화된 북한 문제와 관련,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주민은 굶주리는데 최고위층만 배불리 지낸다는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될 뿐더러 북한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붕괴될 나라가 아니다"며 "1994년 제네바 협상처럼 현실적 대안을 가지고 진지하고 솔직히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DJ는 하벨.만델라와 동급=그녀는 자신이 재임 기간에 코소보 사태를 풀기 위해 유고연방 폭격까지 마다하지 않던 강한 국무장관이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유독 외교적 해결 방법을 고수했던 이유가 김대중 대통령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도 새로이 털어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조지타운대 교수였던 86년 서울을 방문해 가택연금 중인 DJ를 만났고 그의 민주화.통일 정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녀에게 DJ가 건네줬던 "어떤 목표라도 현실적.실질적으로 접근한다면 이뤄낼 수 있다"는 메모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며, 이후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그가 마침내 체코의 하벨 대통령이나 남아공의 만델라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민주당이 미 대선에서 패배하고, DJ 또한 아들의 뇌물 문제로 곤경에 처했던 지난해 11월 DJ와의 마지막 만남을 회상하며 "우리가 함께 추진했던 대북 정책이 물거품이 됐지만 우리는 우리가 옳았다고 서로 격려하며 마지막 포옹을 나눴다"고 전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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