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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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흐레 동안 서울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호송버스 탈주 범들의 도피 행각은 그럭저럭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의 범인들이 숨지고 인질로 잡혔던 고씨 가족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사건은 이것으로 큰 고비를 넘겼지만 뒷맛이 아주 개운치 않다. 그것은 범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 속에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꺼림칙한 잔재들이 뚜렷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보는데서 오는 개운찮음이다.
범인들이 여기저기서 흘린 불평의 소리는 액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당국자들이 국민들에게 해명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이 탈출의 동기로 내세운 판결의 불공정성은 사법당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응답해야할 과제다.
법은 구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일반인에게는 물론, 피고인들 자신에게도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정의로서의 권위와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무전 유죄, 유전 무죄」라는 비아냥이 아직도 교도소 안에서조차 유행어가 되어 있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런 인식이 재소자들에게 남아 있는 한 교화시켜 다시 정상인으로 사회에 환원시킨다는 교도의 참뜻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교정 당국은 감옥 안에서 술이건 담배 건 돈만 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범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 밝혀야 될 것이다. 또 비녀 꽂기 등 잔학한 폭행이 자행되고 있다는 설도 진상이 밝혀져야 될 것이다.
그런 행태가 실제로 교도소 안에서 횡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화보다는 사회제도에 대한 불신과 냉소적 배척감만 키우게 될 것이다.
범인들이 사실이든 조작이든 간에 바깥에 훔친 보물을 묻어뒀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몰래 찾아가 k본 교도관이 있었고, 피 호송자가 칼과 수갑 열쇠를 갖고 탈출을 꾀하고 있을 때 호송 책임자들은 오징어를 얻어먹고 있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더욱 가관인 것은 막상 범인들의 인질 현장을 확인한 경찰의 행동이었다. 권총 한 자루를 지닌 4명의 인질 범들을 잡기 위해 동원된 인원이 1천여 명이라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해도 아이들 전쟁놀음처럼 보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범인들이 경찰의 포위망을 눈치챌 때까지는 다섯 집을 차례로 점거하면서도 폭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의 가는 집마다 묘령의 여인들이 있었지만 무례한 행동을 하려한 흔적이 없고 심지어 한 집에서는 시험 치러 가는 학생을 등교까지 허락해줬다.
범인들의 그와 같은 행동은 조심스럽게만 다뤘다면 어느 쪽에도 희생 없이 이들을 고스란히 검거하거나 자수토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1천 명의 무장 경관이 온 동네를 에워싸고 법석을 떨며 자극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그런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인질 범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분위기를 냉각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포위망을 구축하는 경우 병력을 숨기고 대화를 할 때도 되도록 직접 대면보다는 전화를 사용한다. 그런 냉각된 분위기가 계속되면 흘러가는 시간에 정비례해서 범인들이 이성을 되찾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자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있은 숱한 인질·테러 사건이 모두 그런 방법으로 처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인질들보다 훨씬 더 냉혹한 정치적 테러리스트까지도 설득한 예가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끝까지 버틴 지강헌의 존재 대문에 그런 방법이 주효했을 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경찰은 최대한 그런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 울부짖는 인척들을 내어보낸다든가 마치 무대를 제공하듯 인질을 끌고 나온 범인 앞에 TV 카메라를 코앞까지 접근토록 허용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 1천 명의 무장 경관 대신에 한두 명의 범죄심리학자의 조언이 효과적이었을 상황이었다.
언론 쪽에서도 지나친 보도 경쟁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크게 작용했다. 뒷문을 통해 「유언」을 받아낸 기자가 있는가 하면 TV에서는 범인을 자극하기 쉬운 고씨와의 회견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와 같은 취재 경쟁은 범인들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현장의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고씨의 장녀 선숙 양이 "내가 설득 할테니 자극하지 말라"고 경찰의 자극적 언동을 만류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경찰이 구출하려 했던 주 대상은 바로 가장도 없는 고립무원의 집안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세 자매가 아니었던가. 그들을 구조할 경찰이 오히려 그들로부터 자제를 호소 받았다는 것은 역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이들이 오랜 대치 시간을 겪으면서도 몸에 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은 요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치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사건이 올림픽을 훌륭히 치른 우리 국민의 역량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부풀렸던 직후에 터져서 충격이 크다.
한 사회의 균형 된 발전은 가장 밑바닥에 깔린 문제들을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어느 정도 구비되었느냐 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에 관련된 당국자들은 이 사건을 일과성의 불행으로 지나치지 말고 자체 점검과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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