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쓰고 잘 하고 … 현대의'머니 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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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운영 스타일, 이른바 '머니 볼'이 화제가 됐었다. '머니 볼'은 값비싼 자유계약선수(FA)를 사들이지 않고, 연봉이 적으면서도 가능성 있는 선수들로 팀을 운영하며 성적은 성적대로 올리는, '저비용 고효율'의 경제적 논리를 야구단에 적용한 이론이다.

그런데 한국에 오클랜드보다 훨씬 더 경제적인, 오히려 머니 볼을 한 수 가르쳐줄 만한 구단이 있다. 바로 현대 유니콘스다. 현대가 한국 프로야구에 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시작된 2000년부터 구단을 운영해온 자취를 보면, 나머지 구단들이 엎드려 절해도 좋을 만큼 돈을 벌었다. 그렇다고 성적을 올리지 못했느냐? 2000년부터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3회)을 기록했고 삼성(456승)보다 불과 14승 적은 442승으로 6년 통산 다승 2위다. 올해도 많은 전문가가 선수 이름만 보고 현대를 하위권으로 예상했지만 2일 현재 당당한 3위다.

현대는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구단 재정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연봉이 많아지는 선수들의 부담을 줄이고, 그 자리를 트레이드와 유망주 육성으로 차분히 메웠다. 현대는 2001년 2월 조규제와 조웅천을 SK로 보내면서 15억원을 받았다. '세일'의 시작이었다. 2002년 이재주를 KIA로 보내고 3억원을 받은 현대는 2003년에는 FA 박경완을 SK로 보내며 8억4000만원을 받았고 황윤성을 KIA로 트레이드해 5000만원을 챙겼다. 2004년에는 FA 박종호가 삼성으로 떠나 4억500만원, 2005년에는 심정수와 박진만이 동시에 삼성으로 가며 35억4000만원이 현대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이 돈을 모두 합하면 66억8000만원. 현대가 벌어들인 액수만 그렇고, 이 선수들의 몸값을 줄인 액수는 더 크다. FA 선수들의 몸값만 130억원이다.

현대는 이들이 떠난 공백을 트레이드와 드래프트(신인 지명), 그리고 능력있는 지도자의 힘으로 메웠다. 현대는 정성훈.송지만을 제때 영입해 팀의 중심선수로 키웠고, '신인왕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2002년부터 3년 연속 신인왕(조용준-이동학-오재영)을 배출했다. 예리한 스카우트팀과 능력있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의 '한국판 머니 볼'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효율적인지를 가르쳐준다. 능력있는 인재(지도자)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부분도 시사한다.

그러나 현대의 '머니 볼'에도 그늘은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붙들어둘 수 없다는 것이다. 팀의 상징적인 선수가 될 만하면 몸값이 비싸지고 그러면 팀을 떠나야 한다는 것. 제 아무리 현대라도 극복하지 못하는, 머니 볼의 딜레마이자 한계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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