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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에세이] 미 반이민법 시위에 한인은 덜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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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남정호 뉴욕 특파원

히스패닉을 포함한 수천 명의 시위대가 1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도심에서 새 이민법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로이터=뉴시스]

"추방 불가, 추방 불가(No Deportation, No Deportation)"

노동절인 1일 오후 미국 뉴욕시 한복판의 유니언스퀘어 광장.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멕시코와 미국 국기를 흔들며 목청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단결하는 인민은 지지 않는다"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글귀와 사진이 붙은 피켓을 열광적으로 흔들어댔다.

이번 반이민법 반대 시위는 그간의 데모와는 사뭇 달랐다. 육체노동과 허드렛일을 담당해온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한꺼번에 일터를 박차고 참여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이민자들 없이 굴러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쏟아졌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싱거웠다. 대부분의 상점과 공장들이 별 탈 없이 돌아갔다. 예고된 파업이라 충분한 준비가 가능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맨해튼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H 마켓 매니저 김근수씨는 "5명의 히스패닉 종업원 모두 보통 때처럼 일했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신세라 시위에 나갈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특히 뉴욕의 시위 현장에서는 한국 교민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인 밀집촌인 플러싱에서 교민단체 대표 30여 명이 모여 성명서를 발표한 게 고작이었다.

물론 교민들이 여러 모로 반이민법 반대 데모를 지원한 게 사실이다. 전체 한인업소의 3분의 1가량은 아예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일부는 시위에 나가는 히스패닉 직원에게 도시락까지 싸줬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도 막상 각 민족들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현장에서 이번처럼 한국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사정이야 어떻든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인 불법이민자는 36만~4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러다 히스패닉계의 주도로 반이민법 정책이 개선되면 '한국인들은 공짜로 혜택을 누리려 한다'는 비판이 일까 걱정이다. 뉴욕 시위현장에서 만난 중국인 기자는 불쑥 이렇게 물어왔다. "한국인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때론 보이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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