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환(감리교 신학대 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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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구촌의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며 손에 손을 잡고 벌였던 인류역사 최대의 축제인 88 올림픽을 통하여서 한국은 세계의 한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오늘 오후부터 서울에서 열린 8회 장애자 올림픽에 대하여서는 외국의 언론과 함께 우리나라 국민들마저도 큰 관심을 나타내자 않고 있다. 최근 장애자 올림픽에 대하여 따뜻한 사랑의 관심을 표명한 단체 가운데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단체가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희망의 징조라고 보겠다.
돌이켜보면 정신박약자나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는 신체장애자는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교회나 사찰에서조차 차별대우를 받았고 무시돼왔다. 장애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식물이나 과일처럼 약한 종자에서 나온다고 인과응보 론에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보건기구 (WHO)의 발표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인구 40억 가운데 10%가 되는 4억이 신체장애자라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생활이 부요 하여지는데 정비례하여 신체장애자가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또 노인의 인구가 증가되어 거의 전 인구의 9%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회색의 노인 파워와 함께 장애자 파워는 폭발적으로 변모하는 세계의 제3세대로서 심각한 물음을 제기하여 주고있다.
예수님은 정상인과 함께 신체장애자가 손에 손잡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통하여 자신의 선교 사명을 밝혔다 (마태복음 11장 5, 6절). "눈먼 자가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된다.
그때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달리며 벙어리의 혀가 노래한다" (이사야 35장 5, 6절). 예수는 「세리와 죄인」처럼은 멸시 당하고 있던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저들과 식사를 함께 하시기도 했다 (누가 15장 2절). 최후 심판의 비유 (마태 25장)를 통하여 예수는 앞으로 세계를 심판하실 분은 지극히 작은 자들 가운데 숨어 계신다고 하였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은 곧 나에게 한 것이다" 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앞으로 열려지는 새로운 세계 (천국)의 주인공은 건강한 사람들이 조소하고 소외시키고 있는 장애자다.
참으로 지극히 작은 자들은 아름답다. 왜일까. 무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장애자 올림픽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65개국에서 서울을 찾아온 장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위대한 인생의 스승이요, 인간 승리자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며칠 전 TV에서 소개되었던 미국 「케네디」 상원 의원의 아들은 골수 암으로 다리 한쪽을 절단하였지만 그 고난과 절망을 이기고 다시 일어섰다. 이번 올림픽 성화 봉송주자로 초대된 미국의 선천적 장애자 「케니」는 이미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영화를 통하여서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태어날 때부터 척추발육이 불안정하여 6개월만에 하반신을 절단 당하고 상반신을 두 팔로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이 소년의 얼굴에는 기쁨과 용기가 넘쳐 있다고 한다.
마라톤 2연패를 한 뒤 하반신 불구가 된 몸을 끌고 양궁 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딴 에티오피아의 「아베베」를 비롯하여 올림픽 승마선수가 낙마하여 신체장애자가 되자 수영선수로 다시 재기하였다는 이탈리아의 「루카판·찰리」는 모두 고독과 절망에 파멸 당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인생의 스승들이다.
고독과 죽음을 노래하던 시인 「릴케」는 말년에 이르러서 평안·인내·희망 감사를 노래하며 "우리들의 최후에서 두 번째 말은 비참이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 말은 「아름답다」이어라"라고 노래하였다.
사실 인생과 세계를 보는 시각만 바꿔진다면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열려지는 아름다운 대자연처럼 인생과 세계는 그처럼 멋진 세상, 한번 젊음 전체를 불태우며 살아볼 만한 영광스러운 싸움터다.
어찌 다리 하나가 없어졌고 하반신이 절단되었다고 하여서 인생 자체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인생을 다리 하나나 하반신과 꼭 같은 것으로 동일시 할 수 있을까. 서울 하늘 아래에는 전 세계에서 위대한 인간 승리자들이 모여서 몸의 한 부분이 기능마비가 되었어도 인간은 얼마나 멋진 삶을 살수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저들은 모두 생의 의미와 목표를 잃은 데서 오는 「진공 노이로젠 (V·프랑클)라는 절망을 극복한 위대한 인생의 스승들이다.
둘째로 운명적 도전에 대한 극복을 손에 손잡고 다짐하는 인간 승리자를 맞아서 올림픽 축제를 개최하는 우리나라는 유엔이 1981년을 장애자의 해로 정하기 이전부터 이미 장애자를 위한 복지법과 복지시설을 통해 장애자 파워를 사회발전을 위하여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전 인구의 10%는 장애자이고 거의 10%가 노인이 된 세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들도 선진국 대열에 끼려는 역사의 전환점에 서서 지극히 작은 자들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제도와 복지시설을 마련하여야 한다.
미국의 70년대를 지배하였던 성난 흑인 반란과 여성 반란의 파도를 넘으면서 80년대에 들어서며 대두된 문제는 바로 노인 파워와 장애자 파워의 문제였다. 장애자들은 운명의 소여로 주어진 신체장애를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기회로 삼으며 자유의 도약판으로 삼고 있다. 저들은 운명적인 고난을 자기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믿고 절망 저 너머에 있는 드높은 삶의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사회와 학교, 교회와 사찰들은 인생의 위대한 스승인 장애자들을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장애자들이 우리사회 안에서 역사의 주체라고 실감하며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날 약속하신 그 나라는 이 땅 위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저들 모습 속에서 그분의 얼굴을 읽는 이는 곧 하나님을 본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그리고 작은 자들에게는 삶에 대한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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