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층 아픔 대변한 민족주의자-노벨상 탄 「마흐푸즈」와 작품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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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전혀 뜻밖의 일로 나 개인을 위해서나 아랍문학을 위해 지극히 기쁘게 생각한다."
아랍어 권에서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집트 작가 「나기브·마흐푸즈」의 수상 후 첫 소감만큼이나 그에게 상이 돌아간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으며 또 2억 인구에 이르는 아랍어 권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 등 서사 문학을 통해 아랍은 서구의 서사 문학 발전에 충분한 자양을 제공한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20세기를 전후하여 서구의 소설 문학이 유입됨으로써 거꾸로 「변두리 문학」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마흐푸즈」의 수상으로 현대문학에 있어 아랍 문학이 서구 문학과 동등한 수준에 놓이게 됨으로써 아랍문학 전체의 영광이 됐다.

<기회주의 비난도>
대학 생활을 통해 영국의 사실주의 작가들과 빅토리아조 시대 작가들을 접하면서부터 문학에 눈을 뜨게 된 「마흐푸즈」는 39년 첫 단편집 "정신나간 속삭임" 을 발표하고부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이래 지금까지 40여 년의 작품을 내놓았으며 이 가운데 12편이 영어로 번역됐고 또 독어·불어·스웨덴어로 번역돼 서구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그는 소설 외에도 여러 편의 희곡을 발표했는가하면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대본만도 30여 편이나 된다.
「마흐푸즈」는 1911년 이집트 카이로 중류 공무원 가정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1971년까지 이집트 정부 종교성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이집트의 유력지 「알아흐람」지의 고정 집필자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카이로 대학 전신인 킹 파하드 대학에 입학, 철학을 전공하면서 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그때부터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30년 대 중반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고대 이집트 왕조를 다룬 작품들을 이집트의 여러 신문·잡지 등에 무보수로 발표하며 창작 수업을 쌓아 「인내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52년 3대를 다룬 대하소설 "3부작" 을 완성하면서 이집트 문단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 후 52년 「나세르」 혁명이 터지자 그는 7년 동안의 작가적 공백기로 들어갔다. 카이로의 소외 계층을 묘사, 사회 고발성 소설을 써오다 혁명으로 절필에 들어간 그에게 비양심적 기회주의자라는 일부 비난도 있었으나 대부분 평자들은 혁명에 대한 기대와 실망, 가치관의 동요 속에서 새로운 작품구상을 위한 충전기로 보고 있다. 이러한 평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는 59년 그 이전의 사실주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이번 노벨상 수상작인 "우리동네 아이들" 을 발표하게 된다.
「마흐푸즈」의 작품활동은 크게 3기로 나뉜다.

<"애 문학 완성" 호평>
39년 첫 단편집 "정신나간 속삭임" 이래의 초기 작품세계는 52년 완성한 "3부작"으로 특징지어진다. "3부작"은 1919년에서 44년까지 아버지·아들·손자 3대의 한 가정 변천을 다룬 반 자전적 대하소설로 구 카이로시의 골목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삵을 있는 그대로 그린 사실주의 소설이다. 이같이 그의 초기작품은 카이로 뒷골목의 소외된 계층의 삶을 묘사, 이집트 사실주의문학을 완성시킨 작가로서의 평을 받았다.
제2기는 52년 「나세르」 혁명 후 7년 간의 절필을 끝내고 59년 발표한 "우리동네 아이들" 에서 시작된다. 이 소설은 리얼리즘에서 탈피, 성서 속의 인물인 아담·이브·모세·예수·모하메드 등을 현대 인물의 성격으로 전형화 시킨 일신론 신앙 아래 놓인 인류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인류의 선악 등 보편적 문제를 지극히 염세적으로 다룬 작품이어서 종교 모독으로 몰려 이집트에선 출판하지 못했다.
이처럼 그의 2기 작품은 형이상학적으로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해 눈을 돌림으로써 "전 인류에 공감을 줄 수 있다" 는 스웨덴 한림원의 이번 노벨 문학상 선정이유를 획득하게 되고 그의 작품세계가 카이로를 벗어나 세계 성을 띠게됐다.
61년 "도적과 개들" 을 발표하면서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앞의 두시기를 종합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도적과 개들" 을 비롯, "메추라기와 가을" "나일강의 잡담" "빗속의 사람" 등이 이 시기의 작품으로 고독·절망·소외 등 인간의 존재문제로 눈을 돌려 사실주의적인 간결한 묘사 속에 무의식의 자동기술·상징 등을 혼합, 사실주의·상징주의·실존주의 등의 종합을 시도하고 있다.

<고령에도 창작열>
70년 아랍 작가들의 최고 영예인 「문인들을 위한 국가 상」과 72년 「이집트 공화국 훈장」을 수상한 그는 일찍부터 "표준 아랍어를 창조적으로 활용, 아랍 문학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아랍 문화권의 영웅"으로 평가 받아왔다.
77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카이로 유력지 알아흐람 지에 고정 집필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매일 카이로 뒷골목 커피숍에 들러 1시간씩 보내고 있는 「마흐푸즈」씨는 "쓰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는 날이 내겐 죽음" 이라고 할 정도로 아직도 집필에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도적과 개들" 이 86년 송경숙 교수 (외대 아랍어 과)에 의해 번역돼 국내에서도 출간 됐다.
이번 「마흐푸즈」의 수상은 스웨덴 한림원의 구미 편향에서 벗어나 제3세계 문학에도 좀더 눈을 돌려야된다는 인식아래 비롯된 것이어서 우리 한국문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흐푸즈」 연보
1911년 11월11일 = 이집트 카이로 중류 가정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출생
1934년 = 킹 파하드 대 (카이로 대 전신) 철학과 졸업
1939년 = 첫 단편집 "정신나간 속삭임" 출간
1939∼71년 = 이집트 종교성 공무원 재직
1942∼52년 = 출세작 "3부작" 집필
1952년 =「나세르」의 7월 혁명 이후 7년 간 공백기
1959년 = 노벨상 수상작 "우리동네 아이들" 발표
1970년 = 문인들을 위한 국가상 수상
1972년 = 이집트 공화국 훈장 수상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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