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곰두리와 함께 사는 사회|노계원<편집국장 대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울올림픽이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달 30일 잠실 주 경기장에서는 5만 관중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의외의 장면이 벌어졌다.
장애자 올림픽에 참가할 국내외 선수들이 여자 8백m와 남자 1천5백m 두 종목의 시범경기를 벌였던 것이다. 휠체어가 트랙을 달리는 동안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고 맨 꼴찌로 들어오는 장애자 선수에게는 유난히 큰 함성으로 격려를 잊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 능력을 테스트한다는 육상경기 트랙에서의 이들 장애자들의 시범경기 기록은 물론 성한 몸의 선수들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치 못한 몸에도 불구하고 성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뛰겠다는 의지와 또 뛸 수 있다는 가능성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들은 성한 사람들의 화려한 잔치마당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한 맺힌 질주에 감동되어 힘찬 환호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 장애자들만의 국제적인 잔치가 열린다.
오는 15일부터 열흘동안 서울시내 각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제8회 서울장애자올림픽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65개국에서 4천3백여 명의 심신장애자 선수들이 참가해 육상·수영·축구·유도 등 16개 종목 7백30여 가지의 경기를 벌인다.
장애자들끼리 모여 경기를 하고 이를 TV로 중계한다는데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성한 사람들도 특별한 재능과 고된 훈련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경기를 해내는 장애자들의 부자연스런 모습이 안스러워 차마 보기에 민망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들이 여러 가지 신체적·정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사를 갖는 것은 바로 그들도 뭐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일반사회에 이 사실을 인식시키자는 뜻과 비원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적인 자별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허물어져 가려고만 하는 자신의 생에 대한 애착과 의욕을 새삼 추 스려 세우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한사코 외면하려고만 하는 사회에 대해 그들이 그토록 버림을 받아야 할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님을 과시하는 처절한 항변이기도 하다.
이러한 육체활동을 통해 장애자들은 신체적 기능퇴화를 막고 체력증진을 도모하며 심리적 위축을 해소시키는 동시에 자기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자신감이나 보람을 확인함으로써 사회적응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장애자 재활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에의 통합과 적응이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체육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자들도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며 이웃이고 국민이라는 인식, 그들도 우리와 함께 동 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그들에 대한 통념은 거듭나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1백만 명에 이르는 장애자들이 차별의 음지에서 소외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인간적 편견과 사회적 차별뿐만 아니라 법적·제도적 차원에서의 인권보장자체도 전무한 상태나 다름없다.
장애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향적인 동정심이나 시혜가 아니라 평등한 인권의 확보와 스스로 일하며 떳떳하게 사는 삶이다. 장애자 의식조사 때마다 밝혀진 사실이다. 그들은 자선이 내포하고 있는 동정과 연민보다는 복지가 뜻하는 평등과 호혜를 갈망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로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장애자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일이다.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할 뿐만 아니라 생계도 유지하고 사회에 참여해서 근로의 즐거움과 삶의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신체 일부의 장애는 다른 신체부분의 뛰어난 기능으로 보상된다고 한다. 예컨대 청각장애자는 시각이 정상인 보다 훨씬 예민하고 시각장애자는 청각과 후각·촉각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육체적 결함이 정신적 탁월함으로 보상받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다. 세계 최정상의 오르가니스트 발하는 맹인인데도 5백여 개의 오르간 건반을 신기로 다루는 명인이다. 근무력 증이라는 불치의 범으로 전신이 마비돼 손가락 하나 쓰지 못하는 케임브리 지대의 스티븐·호킹 교수는 현대 이론물리학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 받고 있다. 반면에 오욕스런 삶의 족 적을 남긴 군상들이 사지육신이 멀쩡하지 않은 자가 없음을 음미해 볼일이다.
장애자들에게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 능력을 극대화시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와 정부, 그리고 기업이해야 할 도리일 것이다. 그러한 도리에 충실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국가적 역량도 성숙했다는 생각이다.
장애자 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성원과 참여는 지난번 올림픽 때에 못지 않게 적극적일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회성의 흥청거리는 잔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바탕 떠들고 돌아서 버리는 행사에 불과하다면 그 뒤에 그들을 엄습할 허탈과 상실감은 더욱 쓰린·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큰 절망을 잉태시키는 순간적 쾌락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식전이 아무리 호화롭고 완벽할지라도 그 뒤에 장애자의 슬픔과 고통이 여전하다면 이 제전은 가식이요, 기만일 뿐이다.『장애자도 인간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재인식시켜 그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삶을 누리도록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세계장애자 스포츠 기구사무총장 스쿠르트 여사의 말을 마음에 새기자. 우선 곰두리의 잔치에 우리 모두 갈채를 보내고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구체적인 방법을 실천하도록 하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