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잠수함' 김병현 다시 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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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병현(27.콜로라도 로키스.사진)이 시즌 첫 선발로 나선 5월의 첫날. 플로리다 말린스의 홈구장 돌핀스타디움은 마냥 화창했다. 김병현은 그 화창한 햇살 속에 유니폼 번호를 49번에서 48번으로 '낮춰 달고'나왔다. 지난해까지 달았던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49번은 마무리투수 호세 메사(40)가 가져갔다. 김병현은 그렇게 낮은 마음으로 낮게 던지는 듯했다.

'칠 테면 쳐봐라'며 공격적으로 '들이대는' 투구 패턴은 여전했다. 그 자신감 넘치는 투구에 말린스 타자들은 한여름 얼음과자처럼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오른쪽 허벅지 부상과 손가락 물집 등 김병현의 주위를 맴돌았던 불안한 그늘도 함께 사라졌다. 6과3분의2이닝 5피안타.1실점. 팀은 3-1로 이겼고 김병현은 시즌 첫 승리와 함께 자신의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9개)도 낚아 올렸다.

김병현이 2-1의 리드를 지켜주자 로키스는 9회 초 루이스 곤살레스의 홈런으로 3-1로 점수를 벌렸고 김병현의 번호 49번을 가져간 메사가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자신의 통산 320번째 세이브(메이저리그 역대 12위)를 올렸다.

김병현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무척 흥분했었다. 뭔가 할 수 있고 보여주겠다는 자신에 넘쳤다. 그런데 다쳤다.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김병현은 지난해 연봉(657만 달러)보다 대폭 깎인 액수(125만 달러)에 1년 계약,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이후 팀의 스프링캠프에서 오른쪽 허벅지를 다쳤고, 이후 재활 등판에서 손가락 물집 탓에 불안했다. 이날 투구는 그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기 충분했다.

팀이 지구 1위로 질주하며 원정 3연전을 싹쓸이하자 클린트 허들 감독은 "이제까지와는 모든 게 한 단계 좋아졌다"며 기뻐했고 밥 애포다카 투수 코치는 "의미 있는 승리다. (김병현 덕분에) 불펜투수를 아낄 수 있었다"고 자축했다.

김병현보다 세 시간 뒤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부진했다. 5이닝 6피안타 5실점. 구위는 괜찮았지만 위기 때 견디지 못했다. 5점을 모두 2사 후에 내줬고, 0-1로 뒤진 5회 초에는 2타점 적시타와 2점 홈런을 거푸 내줬다.

박찬호는 파드리스가 9회 말 5-5 동점을 만들어줘 패전을 면했다. 파드리스는 연장 10회에 6-5로 이겨 5연패에서 탈출했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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