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리면서 일자리 늘려라?…상반된 신호에 고민 깊은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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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확대라는 상반된 주문을 동시에 내놓으면서 재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LG·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은 다음달 하순부터 지원서 접수에 나서는 등 대졸 신입사원 공채 일정을 시작한다. 채용규모를 조속히 결정해야 일정에 차질이 없다.
재계 내부에서는 올해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다소 늘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국내서도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당부한 데 대해 '성의'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 여건만 보면 고용을 늘리기에 사상 최악의 환경이라는 점이 고민이다. 우선 경제 불확실성이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무역전쟁 불똥이 언제 튈지 모른다.
유환익 한경연 정책본부장은 "무역전쟁은 우리 경제 핵심인 수출시장에서 언제든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인건비 부담을 늘려놓으면 수출 타격, 매출 감소 상황이 갑자기 들이닥칠 때 견뎌내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도 변수가 됐다. 대기업에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거의 없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폐업을 고민하는 등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만 고용 확대를 발표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삼성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당부를 직접 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어느 정도 선에서 화답할지가 다른 기업들의 묵시적 가이드라인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채용 규모를 숫자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엔 변함없고, 그룹이 사라진 만큼 계열사들이 필요 인력만큼 충원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 내부에서는 정부 주문에 화답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몇% 늘린다' 정도의 언급을 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일자리는 기업이 신사업 투자에 나설 때 가장 많이 생긴다"며 "임금을 올리면서 고용도 늘리라는 것은 우회전 신호를 켜놓고 좌회전 하라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문"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실업자 수는 103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10%대를 기록하고 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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