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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보이스 피싱으로 잃은 돈, 국가가 찾아 돌려준다

중앙일보

입력

“다단계로 잃은 돈, 되찾는데 10년 걸렸는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다단계 사기범 곽모(49)씨는 2007∼2008년 “투자회사를 상장한 뒤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속여 총 1만여명으로부터 2580억원을 받아 챙겼다. 그는 2010년 10월 징역 9년이 확정됐다. 곽씨가 사기금액 중 19억6000만원을 미국으로 빼돌려 캘리포니아에 부인 명의의 빌라를 구매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0년 10월 검찰은 “곽씨의 부동산을 몰수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달라”고 미국 사법당국에 요청했다. 2013년 3월 미국 사법당국이 해당 빌라를 공매해 약 11억원(96만5000달러)을 확보했지만, 피해자들이 실제로 돈을 돌려받기까지는 4년이 더 걸렸다.

우리나라에는 국가가 사기 범죄로 인한 피해 재산을 확보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기 피해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은 국가가 피해자들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했고, 지난해 3월이 되어서야 환수 작업은 마무리됐다.

재판 종결 전에도 국가가 나서서 ‘재산 동결’

곽씨 사례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보이스피싱이나 유사수신, 다단계 사기로 잃은 재산을 국가가 범죄자로부터 직접 되찾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제도를 추진된다.

법무부는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17일 입법예고한다고 16일 밝혔다.

개정안은 국가가 몰수ㆍ추징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범죄피해재산’ 범위에 ‘특정사기범죄’로 취득한 재산을 추가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범죄단체를 조직해 벌어진 사기범죄나 유사수신ㆍ다단계판매ㆍ보이스피싱 범죄가 포함됐다.

그동안 사기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으려면 민사 손해배상을 별도로 청구해야 했고, 가해자에게 죄가 있다는 형사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증거 확보나 강제집행을 위한 범죄피해재산 추적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민사에서 승소했어도 앞선 곽씨 사례처럼 이미 재산이 해외로 빼돌려진 경우가 많았다.

개정안 시행 전 확정판결 안 난 사건까지 적용

개정안이 시행되면 보이스피싱ㆍ유사수신ㆍ다단계 사기 피해자들은 복잡한 민사소송과 강제집행 과정을 거치는 일이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 검찰 등이 범죄자를 수사하는 단계에서 피해 재산으로 의심되면 즉시 몰수ㆍ추징보전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결정하면 해당 재산은 동결됐다가 형사 재판 확정 후 피해자들에게 가게 된다.

개정안 시행 전에 재판 확정판결이 난 사건의 경우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
법무부는 또 사기죄 전체에 몰수ㆍ추징을 허용할 경우 고소ㆍ고발이 남발하고 민사사건이 형사사건화 될 것을 우려해 일부 유형의 사기로 대상을 제한했다.

개정안의 입법예고기간은 8월 27일까지로 해당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공포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조직적인 다중피해 사기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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