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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보좌관 “폐기된 법안 주워먹기, 법 이름만 바꿔 재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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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호 10면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는 바로 의원실 보좌관이다. 의원의 손과 발이 돼 현장의 민원을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국회 법제실에 입안을 의뢰한다. 법안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통과를 위해 물밑에서 움직인다. 이들이 생각하는 의원 입법의 실태는 어떨까. 비실명을 전제로 허심탄회한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19대 때 통과 안 된 법안 골라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만 찍어 #80~90%가 건수 채우기 날림 발의

▶A 보좌관=“언론이나 단체·기관에서 법안 몇 개 이렇게 숫자로 평가하니까 너무 날림으로 발의해 놓고 통과됐는지 신경도 안 쓰는 의원들이 태반이다. 19대 때 통과 안 된 거 수두룩하니 그거 주워 담아 또 발의한다. 읽어보지도 않고 (법안에 도장을) 찍는 경우도 많다. 법안 발의의 80~90%가 다 그럴 거다. 이렇다 보니 행정력 낭비다. 국회사무처 공무원들은 검토보고서를 내야 하고 정부 부처는 검토의견 회람시켜야 하고. 지난 국회 때 검토보고서로 요식행위 하는 일도 있다. 법안의 질을 갖고 평가를 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B 보좌관=“한 달에 한두 개씩 찍어내면서 1년에 법안 100~200건 발의했다는 의원실, 그런 곳은 전수조사를 해봐야 한다. ‘벌금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징역 1년에서 2년으로 한다’, 이런 거로 건수 채우는 게 엄청 많다. ‘건수 올리기용’ 법안이다. 특히 초·재선 의원실에서 그런 게 많다. 제정법, 전부개정, 특별법처럼 법다운 법을 내는 곳을 보기 어렵다. 폐기된 법안을 주워 먹기, 똑같은 법 이름을 바꿔 재탕하기, 이런 의원·의원실은 반성해야 한다”

▶C 보좌관=“법안 통과 과정에서 상임위 전문위원들의 역할이 상당하다. 전문위원이 ‘이 법은 바람직하다’고 하면 상임위에서 쑥 통과된다. 그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십중팔구 통과가 안 된다. 그러니 의원들이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이번에 특수활동비 중 매달 1000만원씩 그쪽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있다. 왜 전문위원실에 1000만원씩 줬겠나. 그들에게 잘 보여야 통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임위 소위에 가면 전부 그 사람 입만 보는 게 한심하다. 의원들이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너무 의지한다. 법안을 국회의원이 만드는 게 아니고 사실상 전문위원이 만든다 싶다. 이런 문제를 많이 제기했는데 해결이 안 되는 게 의원들이 그들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찍히면 법안 통과 안 될까 봐. 기업들도 의원실이 아니라 전문위원들을 찾아간다. 한심한 현실이다.”

▶D 보좌관=“의원이나 보좌 직원들이나 법안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없다. 경쟁적으로 유사법안 발의하고, 발의할 때도 (발의요건인 의원 ) 10명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다. 설득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통과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잡화상처럼 마구잡이로 법안만 발의하니 법안에 대한 소명의식이 희박하고 상임위나 본회의에 대해 관심이 없다. 언론도 발의하는 데까지만신경 쓴다.”

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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