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동본이 안타까운「금메달 커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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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여자핸드볼 팀이 소련을 꺾고 한국 구기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하던 순간 누구보다도 기쁘고 감격했던 사람은 유도 60㎏급의 금메달리스트 김재엽(23·쌍용)이었는지도 모른다.
4년간 태릉훈련원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가깝게 사귀어온 김경순(23·대선주조)이 팀의 일원으로 그의 뒤를 이어 금메달리스트가 됐기 때문이다.
『경순아, 장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두 손을 꼭 잡고 이처럼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 앞에 그저 TV만 지켜보며 충동을 삭이고 말았다.
두 사람은 84년 봄 태릉훈련원에서 처음 만났다.
각각 유도국가대표와 핸드볼국가대표로 선발되어 LA올림픽에 대비한 합숙훈련을 받고있을 때였다.
김재엽은 많은 여자선수가운데 특히 김경순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명랑하고 착한 성격의 이 전라도 광주출신 아가씨역시 무뚝뚝한 듯 하면서도 다정다감 한이 경상도 대구출신의 동갑 나기 총각이 싫지 않았다.
그때 만해도 대표팀의 막내둥이였던 이들은 드러내놓고 내색은 못한 채 주위의 눈길을 피해 가끔씩 휴게실 등에서 만나 힘든 훈련원 생활의 고충을 나누었고 각자 최선을 다해 LA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자고 다짐도 했다.
LA올림픽에서 나란히 은메달을 따내는데 그쳤던 이들은 이후 86아시안게임 (김재엽)및 87네덜란드세계선수권 (김경순)에 대비한 합숙훈련을 받으며 점점 더 정이 깊어짐을 느꼈고 이에 따라 만남의 횟수도 잦아졌다. 주위에서「훈련원 커플」운운하며 놀려대기도 했으나 별로, 개의할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몹시 아끼고 좋아하면서도 서울올림픽이라는 대사 앞에서 별다른 관계진전을 이루진 못했다.『우리의 장래는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후 설계하기로 하자.』
마침내 금메달의 꿈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고 이들은 장래를 설계할 자격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많은 난관에 봉착해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동성동본이었던 것.
『하필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동성동본이냐.』양가의 부모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아직 나이가 있는 이들은『좀더 두고보겠다』며 말꼬리를 흐리고 있는 상태.『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금메달의 감격에 젖었다가도 금세 우울한 얼굴이 피곤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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