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후 국정청사진 제시|노 대통령 국정연설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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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헌국회 이후 처음으로 4일 국회에서 있은 노태우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는 장기적으로는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비전을 통해 5년 임기 중의 정책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단기적으로는 당장 올림픽 이후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
노 대통령이 제시한 제6공화국의 비전과 정책은 한마디로「민주번영의 통일 시대」로 요약된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 크게 보아 세 가지만 성실히 추구하면 민주번영의 통일시대는 기필코 온다는 확신을 피력했다.
즉,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고 민주주의를 확고히 실천하면서 선진화합 경제의 실현을 통해 그 같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 같은 목표에 접근하는데는 세계의 벽, 분단의 벽, 계층. 지역·도 농간에 벌어지고 있는 내부의 벽 등 커다란 장애가 가로놓여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 같은 결코 대통령 혼자서는 풀 수 없으며 국민이 화합하고 민주화가 뿌리내린 가운데 경제적 격차를 해소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전제하에 노 대통령은 통일과 북방정책, 민주정치의 실현방법, 선진화합 경제추진에 관한 당면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개진했다.
통일과 북방정책의 기조는 북한의 개방을 내외로부터 과감하게 촉진하는데 두고있다. 그러자면 먼저 남북이 서로 신뢰·화해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전제조건 없이 평양을 방문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새 공화국의 새 통일방안 제시 계획을 천명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노 대통령은 냉전논리와 일방적 주장이 주축을 이뤄 상대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통일방안으로 대립해 오던 남북한의 위상을 임기 중 근본적으로 바꿔 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새 통일방안은 남북 양측이 받아 들여 실현할 수 있는 전진적 내용. 즉 북한측의 종래 주장 중 일부까지 받아들이는 적극적이고도 과감한 내용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의 불가침선언, 미군철수주장 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비롯, 남북 홍보전의 차원을 한 단계 뛰어 넘은 진보적 정치관과 자주 의식이 담긴 통일 마스터플랜을 내놓겠다는 의욕이 엿보인다.
노 대통령은 또 북방정책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 통일여건을 조성하는데 있음을 내외에 선언했다.
소련·중국 등이 우리와 관계개선을 해도 북한을 계속 돕도록 희망한 것은 수사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가 공산권을 포함, 세계를 무대로 모든 나라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북한을 고립 . 약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으로서 활동무대를 넓히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고르바초프의 한소관계 발언에 노 대통령이 직접 명시적으로 대답한 것은 새로운 차원의 외교형태를 보여준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대통령이 되겠다』 는 확고한 실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나 정부 쪽에 어떤 다른 속셈이 있거나 열의가 부족해 민주화가 안 되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여야와 국민들이 함께 나서자는 얘기다.
다만 민주주의란 안정과 법질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간 8개월 여의 전환기를 지내면서 국민들이 터득한 합의이니 만큼 폭력과 불법 행동은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지난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사람과 민주체제를 전복하려는 자를 엄격히 구분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관해 여당은 탄압하고 야당은 저항하는 정치는 종식되어야 하며 그런 뜻에서 야당지도자들이 국가발전에 끼친 공로와 올림픽의 성공에 기여한 점을 대통령이 먼저 명시적으로 평가, 인식과 자세의 전환을 솔선해 보였다.
노 대통령은 60분 연설 중 석=을 경제문제에 할애, 선진화합경제를 새 정부의 경제 독트린으로 선언했다.
요컨대 임기 중 경제는 명실상부한 선진단계에 진입시키겠으며 그 힘은 안정성장에서 찾되 특혜나 부도덕이 없고 계층·지역·도 농간의 격차, 소외 의식을 적극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물가와 경기 침체는 걱정 안 해도 좋으며 부동산 투기는 철저히 막을 테니 두고보라고 호언했다. 나아가 90년대가 맞을 장미 빛 경제상황을 꽤 자신 있게 제시했다. 야당이 외채 망국론을 들고 나온 3년 뒤 흑자로 돌아선 전례를 의식한 듯 비관론을 일축하고 있다.
아뭏든 취임 초분 북쪽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던 노 대통령이 물가안정에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고 안정성장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 후보적 시각이 서서히 국정책임자적 시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높은 국민적 관심도와 문제의 중대성에 비해 노 대통령이 5공 비리에 관해 비교적 간략하고 원론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색적이다. 지난 시대의 일로 지나치게 소모적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국화와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궁금하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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