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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경제 성적…장하준 "학점 보류" 신장섭 "낙제점"

중앙일보

입력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를 초청해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배상근 전경련 전무, 장하준 교수, 신장섭 교수. [사진 전경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를 초청해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배상근 전경련 전무, 장하준 교수, 신장섭 교수. [사진 전경련]

"지난 1년간 분배 정책만 했지만, 불평등만 심화했다. 경제 정책 전반에 F 학점을 주겠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아직은 공부를 제대로 못 했으니, 학점은 보류하고 싶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주최한 '기업과 혁신 생태계 특별대담'. 대담을 함께한 한국의 대표적인 두 경제학자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이렇게 총평했다. 두 학자 모두 긍정적인 점수는 주지 못했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 정책이 실종됐다는 점, 엘리엇 등 외국계 헤지펀드에 의해 국내 산업이 공격을 받는데도 무방비로 대응하고 있는 점을 현 정부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직접적인 비난은 피했지만, 주주 자본주의를 '재벌 개혁'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전경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전경련]

장 교수는 우선 한국 경제가 처한 거시적인 산업 환경이 크게 우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한때 주력 산업이던 조선·철강업 등은 중국에 크게 잠식됐고, 세계 1위를 기록 중인 반도체도 언제 중국에 추격을 당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보다 뒤처져 있는 바이오·신소재·인공지능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봤다.
장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과거보다 하락한 것은 기업의 설비투자가 줄었기 때문"이라며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주주들이 국내 주식 시장을 한국 기업의 '현금인출기'로 활용하면서 대기업의 장기투자가 더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도 같은 의견을 보탰다. 그는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엘리엇이 삼성·현대 등 대기업을 흔들자,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더 좋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며 "미운 대기업이 혼쭐 나는 꼴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순 있겠지만, 한국 산업과 국민 경제에는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특히 단기 투기 자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로 '가중의결권' 제도를 제안했다. 그는 "주식을 1년 이하로 보유한 한 주엔 1표, 3년까지는 5표, 5년까지는 10표 등 오래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기하급수적으로 의결권을 늘려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재벌 일가의 지배구조를 없애기 위해 대기업 집단을 없애는 것은 외국계 주주에게 국민 기업을 넘게 주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도 모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는데 한국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선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상속세율이 55%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는 한국에서 수 대에 걸쳐 기업 지분 상속이 이뤄지다 보면, 소위 '재벌 기업'은 자연스럽게 소멸한다는 것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전경련]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전경련]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민주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제시했다. 신 교수는 "기업의 혁신은 경쟁 기업보다 더 많은 초과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과정"이라며 "현 정부의 혁신 성장은 '평등화'를 지향하는 경제 민주화와 본질에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권리를 갖고 살자는 의미인 민주주의를 기업 조직에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복지 확대는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충분한 복지는 신기술 도입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노동자 저항을 줄여 혁신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두 학자는 대기업에 대한 '문어발식 경영'이란 비판을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대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하지 않았다면, 삼성은 아직 양복을 만들고 LG는 치약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도 "금융계에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면서 기업엔 잘 나가는 한 가지 산업에만 집중하라고 한다"며 "혁신이란 확률이 낮은 산업에 투자해 주력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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