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영장 발부에 낙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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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임직원들이 28일 오후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구속 수감을 지켜보기위해 서울중앙지검 정문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김상선 기자

28일 오후 10시40분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현관 앞. 10층 중수부 사무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검찰 수사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청사에서 걸어나왔다. 국내 재계 서열 2위인 기업의 총수에 대해 구속이 집행되는 순간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장시간 중수부 사무실에서 기다리다 오후 8시50분쯤 결국 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카메라 불빛 앞에서도 처음에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옆에 서 있던 임직원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잠시 몸을 돌려 가볍게 응대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언뜻 얼굴에 침통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날 5시간 넘게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데 진력한 때문인지 지친 기색도 엿보였다. 정 회장은 취재진이 미리 정한 포토라인에 서서 짧게 사진촬영에 응했다. 취재진이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했으나 굳게 닫힌 그의 입은 열릴 줄 몰랐다.

정 회장은 이어 계단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은회색 아반떼 차량에 몸을 실었다. 차는 곧바로 경기도 의왕의 서울구치소로 떠났다. 대검 청사 주변 도로 양쪽에는 현대 에쿠스.기아 오피러스 등 40여 대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어 비장감을 더했다.

이날 대검 청사에는 임직원 20여 명이 나와 정 회장의 구속 집행을 지켜봤다. 청사 정문 밖에도 100여 명이 도열해 정 회장을 태운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켰다. 구속 집행 1~2시간 전에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한숨을 쉬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침묵을 지켰다.

현장에 나온 한 임원은 "그래도 회장님이 가시는 길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아 나왔다"며 "정의선 사장도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날 오후 3시30분쯤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조사를 받았던 대검 1110호실에 머물렀다. 그는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진 이후 최재경 중수1과장실로 이동해 박영수 중수부장과 차를 마시며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백일현 기자<keysm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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