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새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낸 김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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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며칠 전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갈비뼈가 부러져 압박붕대를 감고 나왔다고, 가만히 말했다. 본래 가만한 사람이, 더 가만해졌다. 김사인 시인(오른쪽)과 시집에 해설을 붙인 평론가 임우기씨. 최정동 기자

단언컨대, 김사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은 올 봄 받아본 시집 가운데 가장 무겁다. 154쪽의 시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집을 내기까지 19년간 붙잡아놨던 세월, 묻어두고 쟁여놨던 사연이 무겁다는 얘기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세월이 너무 길다. 그래서 남들 아는 얘기부터 시작한다.

1990년 당시 안기부는 '노동해방문학'(노해문) 발행인 김사인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등) 혐의로 수배했다. 그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와 함께 대표적인 '빨갱이 시인'이었다. 꼬박 이태를 숨어 살았다.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미안하다/…/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어떤가 몸이여'

'노숙'이란 시의 부분이다. 자신의 몸뚱어리를 내려다보며 미안하다고 말을 건다. 그리고 떠나도 되는지 몸뚱어리를 향해 묻는다. 지난해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인 이 시는 외환위기 이후 노숙자의 삶을 다룬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나 이 시는 옛날 수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유언의 한 대목 마냥 비장했던 것이다. 시인은 "원래는 내 얘기였는데, 어쩌겄어, 다르게 읽으면 다르겄지"라고 가만히, 느릿한 충청도 말투로 말했다.

'가만히'. 여기에 또 다른 김사인이 들어있다. 그는 해맑다. 나이 쉰이어도 아이처럼, 혹은 박수 무당처럼 웃는다. 가만가만, 더듬더듬 겨우 입을 열어 하는 말이 "그려, 니 말도 맞어"다. 2년이나 도피생활이 가능했던 건 수많은 문인들이 뒤를 봐줬기 때문이고, '노해문'에 여러 문인들이 참여했던 것도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정작 시인은 왜 '노해문' 맨 앞줄에 섰을까. "그땐 옳은 문학이 전부였어. 그거밖에 없어."

그는 시도 느릿느릿 쓴다. '노숙'이 15년 묵힌 시이듯, 다른 시편도 서너 해 넘게 매만지고 삭혀 내놓았다. '사랑가'와 '여수'는 30년 묵은 시다. 도피 생활 중에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통째로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여태 한 번도 시를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오직 한 수의 시가 나오기까지 남들보다 더뎠을 뿐이다. 시인은 " 재주가 부족하니까 그런 겨"라고, 다시 가만가만 말했다.

기나긴 산고(産苦) 끝의 출산이다 보니, 곁가지 사연도 생겨났다. 한동안 문단에서 비켜있었던 문학평론가 임우기(49) 씨가 40쪽짜리 장문의 해설을 붙인 것이다. 둘은 25년 지기. 평론가는 시 67편 가운데 먼저 '코스모스'에 주목했다. 시인이 드러나는 시라고 했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빈 호주머니여//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그간의 일들을/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힘없고 가난하고 여린 삶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각별하다. 몸이 있으나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는 노숙자('노숙 2'에서 인용), 허리 꺾인 맨드라미('맨드라미' 부분), 마른 쑥대('마른 쑥대에 부쳐' 부분), 바르르 떠는 키 낮은 풀들('풍경의 깊이'에서 인용) 등속은 결국 '코스모스'와 같은 심상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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