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시대"에 한풀꺾인 미 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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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세계 수영계가 평준화 시대를 맞았다.
특히 남자수영의 경우 전통적 강국인 미국의 위세가 크게 수그러들면서 각국이 군웅할거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아직까지 동독이 독주를 필치고 있는 여자부에서도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서울올림픽의 수영(경영)경기는 이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 무대였다.
당초 경영 31개 종목 가운데 12∼15개의 금메달을 획득할 것으로 장담했던 미국은 제3세력권의 돌풍에 휘말려 가장 큰 피해를 보고 8개의 금메달 획득에 그쳤다. 동독은 금메달 11개로 어느 정도 목표에 근접했다. 동독은 아직 돌풍이 불지 않고 있는 여자부에서 10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제3세력권 돌풍을 일으킨 선봉장은 남자자유형 2백m의「덩컨·암스트롱」(호주)이다.
이 종목 세계랭킹 25위이며 국제대회 입상 경력도 86년 영연방대회 4백m 우승이 고작이었던 그는「매트·비온디」(미국)과「미하엘·그로스」(서독)의 대결로 관심을 끌었던 결승 레이스에서 양웅을 따돌리고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1차 쇼크를 불러 일으켰다. 2차 쇼크를 몰고 온 선수는 남자접영 1백m에서 우승한 혹인「앤터니·네스티」(수리남). 그 역시「비온디」와「그로스」의 대결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금메달을 가로채버렸다.
이후 남자배영 1백m 우승자인「스즈키·다이치」(일본), 여자평영 1백m 우승자인「타니아·당갈라코바」(불가리아)등이 속속 출현, 기존 강호들을 주저앉혔다.
이번 올림픽 수영종목에서 특히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의 부상이다.
다이빙에서는 강국으로 위치를 굳혔으면서도 경영에서는 낙후국으로 머물러 있었던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3, 동메달 1개를 따내 4년전 LA올림픽 때 노메달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여자자유형 50m의 양문의, 평영 2백m의 황효민, 자유형 1백m의 장영 등 3명이 은메달을 그리고 접영 1백m의 전홍이 동메달을 따냈다.
중국이 다음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 것인지 충분히 상상이 가는 일이다. 한국수영이 세계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는 사실도 깊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선수들은 11개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는 등 역영했음에도 불구, 모조리 예선 최하위권의 부끄러울 정도의 기록으로 탈락했다. 한국은 당초 남자평영의 윤주일에게 B파이널(16강)진출의 기대를 품어보았었다.
그러나 윤은 1백m에서 출전선수 62명중 26위, 2백m에서 출전선수 54명중 22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한국수영은 특히 자유형 중장거리·배영·개인혼영 등에서는 남자기록이 세계여자 최고기록에도 한참 뒤지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남자자유형 4백m에서 양욱이 수립한 4분5초81의 한국최고기록이 여자우승자인「재닛·에번스」(미국)의 4분3초85에 1초96 뒤지며, 배영 1백m에서 박동필이 기록한 1분1초25는 여자우승자「크리스틴·오트」(동독)의 1분0초89에 0초36 뒤떨어진다.
중국이 하는 것을 비슷한 체격과 체력을 갖춘 한국이 못할리가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수영도 일대 도약의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는 12년만에 동서의 최고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총 출전, 뜨겁게 경합한 때문인지 레이스마다 터치패드를 짚는 순간까지 예측 불허의 각축이 전개됐으며 신기록도 홍수를 이뤘다. 8일간의 열전을 통해 세계신기록 11개와 올림픽 신기록 34개가 쏟아졌다.
수준이 평준화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도「크리스틴·오토」는 여자자유형 50·1백m, 배영1백m, 접영 1백m, 계영4백m, 혼계영 4백m 등을 휩쓸어 6관왕에 올랐으며「비온디」도 72년 뮌헨올림픽에서의「마크·스피츠」의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야심은 깨졌으나 자유형 50·1백m, 계영4백·8백m, 혼계영4백m 등을 석권, 5관왕이 됐다.
여자자유형 4백·8백m, 개인혼영4백m의 3종목에서 우승한「재닛·에번스」와 실명의 위기를 훌륭히 극복하고 남자개인혼영 2백·4백m 두 종목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토마시·다르니」(헝가리)도 오래 기억될만한 스타.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각국 수영관계자들은 올림픽수영장의 뛰어난 시설과 최첨단 기자재에 감탄을 연발했으며 까다로운 수영경기를 그런대로 무난하게 치러낸 운영본부 측의 운영솜씨에도 만족을 표하는 듯 했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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