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칼갈기」에 여 대응 부심|국정감사 대비 분주한 88휴면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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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추석이 지나고 올림픽이 후반에 접어들면서 국정감사에 대비하는 의원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각종 세미나·회합 등을 통해 국정감사에 임하는 기본자세·구체적인 방법체득에 열중인가 하면 국정감사의 무기라 할 자료확보를 위해서도 갖가지 묘안과 함께 백방으로 뛰고 있는 모습이다.
「쓰레기통까지 뒤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보수집에 온갖 비책을 동원하고 있는데 비리관계 책자를 쓴 사람들을 만나는가 하면 자료 제보를 요청하는 야당의 신문광고까지 등장했다.
국정감사가 16년만에 부활돼 대부분 경험이 없는 의원들은 추석을 전후한 지역활동까지 제쳐둔 채 자료준비 등에 분주한 모습들인데 16년 전의 신문스크랩을 들춰보며 감각을 익히기에 분주하다.
여야 4당 역시 일종의 긴장상태에 들어가 있다. 수비적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민정당은 이번 정기감사를 새로운 현안문제의 돌출 없이 무사히 넘겼으면 하는 기대 속에 야당측의 전략을 예의분석, 그에 따른 대응전략을 마련하느라 부심하는 한편 야당이 만일 감사취지에 벗어난 정치공세를 펼 경우 이를 처음부터 철저히 반격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야당은 또 그들대로 과거의 절대권력이 자행한 인권유린·부정부패·불법 부당행위 등을 이번 감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규명, 권위주의적 지배구조를 청산함과 동시에 국정감사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의욕으로 차있는 분위기다.
따라서 각 당은 각종 세미나 등을 열어 소속의원들의 이론무장에 열중해왔는데 특히 평민당의 경우엔 김대중 총재가 상위별 의원들을 조찬, 또는 오찬에 불러『모든 의원이 모든 문제를 다루는 백화점식 감사를 지양하고 조직적으로 분야별로 나눠 팀웍을 이루도록 하라』『특히 지방감사 때엔 술집 등에 가지 말라』는 등 구체적 사항까지 꼬치꼬치 기술지도를 하고있다.
그래서 평민당 의원들은 총재와의 조찬 등 모임을「면접시험」이라 부르고 있는데 의원들이 자신이 준비한 구상·자료요청 목록 등을 먼저 자세히 보고하면 김 총재는 그중 미흡하거나빠진 부분을 지적하고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하는지를 지시, 그래도「합격점」이 아니다싶을 땐 2차 면담을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도 각종세미나 등 기회 있을 때마다『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5공화국 아래서 벌어졌던 각종 비리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국정전반에 만연돼있는 비민주적 잔재를 완전히 청산토록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당의 5공 특위주도 방침과 관련지위 특위 5공 비리 추적에 중점을 두고있다.
공화당 또한「국정감사 주안점」이라는 책자까지 발간, 김종필 총재 등 유경험자를 중심으로 의원별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상임위는 상임위대로「본때 있는 실적」을 거두기 위해 바쁜 몸짓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야당이 위원장을 맡고있는 상위는 위원장의 의욕까지 겹쳐 경우에 따라선 감사자체가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가늠키 어려운 상황까지도 예견된다는 여당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이 마련하고 있는 상위별 역점사항을 보면 ▲법사위=구속자 석방·사면복권 등 인권보장문제, 반민주악법 개폐와 5공 비리 관련사건의 처리상황 ▲외무·통일위=7·7선언의 구체적 실천상황과 사할린동포 등 해외동포의 지위문제, 북방외교 ▲행정위=공무원 신분보장,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도 확립, 교통난 등 서울시 현안문제 ▲내무위=지자제 준비상황과 지방재정의 건실화방안, 경찰의 정치적 중립 ▲재무위=부실기업 정리비리, 대기업의 금융지배와 부동산투기, 금융실명제 ▲경과위=빈부격차해소와 소득재분배 문제, 첨단과학기술의 특별진흥 ▲국방위=군의 정치적 중립과 안기부감사, 주한미군관계 ▲문공위=올림픽예산처리문제와 언론의 민주화 ▲농수산위=추곡수매가의 20%이상 인상 추진과 농어가 부채문제▲상공위=중소기업지원 대책과 지방산업의 육성책 ▲동자위=석유사업 기금의 활용개선방안과 80년 이후 외국저질탄 수입의혹 ▲보사위=최루탄 남용실태와 AIDS대책 ▲노동위=노사분규실태와 노동관계법 개선 ▲교체위=대한선주와 범양 등 해운사 정리 및 지원내용, 제2민항 허가의혹 ▲건설위=그린벨트, 고속도로 휴게소 특혜문제 등이다.
이같은 역점사항을 바탕으로 각 의원들은 나름대로 감사준비에 열중이나 경험부족 등의 탓으로 어디서부터 손댈지 막연한 표정들이다.
감사를 앞두고 야당에는 정부 각 부처나 감사대상기관·유관기관에서 투서·제보들이 엄청나게 날아들고 있다는 소문인데, 문공위소속의 초선인 박석무 의원(평민)은『사무실과 집에 각종 학원관계 제보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모두 들여다볼 시간조차 모자랄 지경』이라고 토로.
일부 의원들은 너무 빡빡하게 짜여진 감사일정 때문에 내부 제보가 없이는 제대로 감사하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실토하고 있는데 최낙도 의원(평민)은 경찰부조리 관계 책을 쓴 저자와 접촉하려 시골까지 다녀왔다.
또 지난 임시국회 때 폭로성 질문으로 시선을 끌었던 민주당의 김정길·김법환 의원 등은『깜짝 놀랄 제2탄을 준비하고 있다』고 벼르고 있고 평민당의 박실 의원은 서울시 관련자료를 위해 무려 1백60가지의 자료요청을 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야당의원들의 야심적인「칼갈기」와 자료채집 노력에 대한 민정당의 걱정은 자못 심각하다.
민정당은 야당측이 이번 감사에서 비민주적인 5공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아래 각종 비리를 파헤치는 데에 1차 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여기에 정부 내 불만분자나 이해관계자들의 중상 모략·모함성 제보·투서 등이 쏟아진다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폭로전의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큰 우려를 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민정당은 감사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쟁점의 부각을 최대한 억제한다는 방침아래 정부측에는 내부제보를 철저히 단속토록 요청하고 있다.
또 의원들도 조사반별로 야당의원들과의 유대강화도 돈독하게 해나간다는 계획.
그러나 국정감사가 자칫 국회의원들의 권한 과시로 흐르고 여소 야대 상황에서 행정관서가 과잉대응을 하게 되면 구태가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한구석에 깔려있는게 사실이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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