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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평양 집값 얼마죠” 북 “사고팔지 않습네다” 남 “에이, 다 아는데” 북 “…”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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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5일 오전 평양에서 출근하는 여성과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일 오전 평양에서 출근하는 여성과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통일농구경기 참가차 방북한 남측 공동취재단이 5일 전한 평양의 모습엔 반미 구호가 거리에서 사라지는 등 북·미 정상회담 이후 변화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통일농구 남측 취재단이 본 평양 #반미 구호 거의 사라진 평양시내 #10㎝ 하이힐 신은 여성들 활보 #북측 인사, 서울 부동산 관심 많아

기자단이 방문했을 때 평양 시내는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일인 9·9절을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매일 저녁 많은 주민이 김일성 광장에 모여 집체극(集體劇)을 준비했다. 풍선을 든 소년 무리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평양 시내 곳곳에 설치된 선전 간판 등에서는 이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반미 구호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일심단결’ ‘계속혁신, 계속전진’ 등 내부 결속을 다지는 선전문구가 대부분이었다. 만수대에서만 반미 문구가 눈에 띄었다.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남측 정부 당국자는 “북한 선전물의 숫자도 크게 줄었지만 반미 관련 내용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단과 기자단이 묵었던 고려호텔에선 구찌·샤넬·불가리·디올·랑콤 등 서구 명품 브랜드의 가방·향수·화장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향수는 200~300달러로 한국 판매 가격과 비슷했다. 고려호텔 안에 있는 냉면가게는 옥류관·청류관·민족식당과 함께 북한 4대 냉면집으로 꼽힌다. 기자단이 맛보니 소문대로 맛이 좋았다. “육수에 뭘 넣은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직원은 “식당 비밀입네다”며 웃었다.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엔 남측과 연결되는 직통 전화가 설치됐다. 국가번호인 ‘0082’를 누르고 한국 번호를 누르니 마치 인근에서 전화를 한 것처럼 깨끗한 음질로 통화가 됐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지방 시찰 중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남측 대표단과 환담했다. 5일 오전 고려호텔을 찾은 김 부위원장은 “탁구경기에 우리가 나가게 될 것이다. 창원 사격경기대회도 나가자고 생각한다”며 “그렇게…우리 사격 선수들이 총으로는 잘 못 쏴요”라며 웃었다. 이어 “탁구 경기도 옛날에는 좀 있었는데 퇴보했다”며 “남측에서 좋은 경험을 통해 기술을 배우는 것이 북측 선수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오는 7월과 8~9월에 열리는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와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북측 인사들은 남쪽 상황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북측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몸살이 나셨다는데 많이 안 좋으신 것입네까” “왜 그렇게 되신 겁네까”라고 물었다. 서울 부동산에도 관심을 보였다. “서울은 방값이 한 달에 얼마나 합네까? 달라(달러)로는 얼마나 됩니까?”라며 질문을 쏟아냈다. 반대로 남측 기자단이 고층 아파트를 가리키며 북측 관계자에게 “저런 살림집 한 채는 얼마입니까”라고 물으니 “우린 집을 사고팔지 않습네다”고 답했다. 기자단이 “에이~다 사고팔고 하는 거 알아요. 얼마예요 대략?”이라고 물으니 입을 다물었다.

북측 인사들은 사진에 김정은 위원장 초상이 비뚤어졌거나, 초상 한 귀퉁이라도 잘린 채 찍혔다면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양해를 구하고 기자단의 사진을 확인했다. 그들은 잘 찍힌 사진을 확인하고 환한 표정으로 “아주 반듯하게 잘 모시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농구 경기 사회를 본 남측의 박종민 아나운서는 K팝 음악 30곡을 준비해 갔다. 경기 중간중간 북한 관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북측의 반대로 틀지 못했다고 한다.

평양=공동취재단,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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