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평양 가는 폼페이오, 납득할 비핵화 약속 받아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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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방북해 북한 측과 비핵화 문제를 논의한다. 폼페이오의 이번 방북은 사뭇 늦은 감이 없지 않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후속 협상을 개최한다”고 합의했었다. 곧바로 가시적 조치가 이뤄질 걸로 기대됐던 이유다. 하지만 정상회담 후 폼페이오의 방문이 이뤄지기까지 23일이나 걸렸다.

최근 북한이 취한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라곤 아무것도 없다. 북·미 정상회담 전인 지난 5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 게 전부다. 북핵 위기가 없어지기는커녕 미국 언론에서는 핵시설 은폐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여태껏 북한이 영변의 2배나 되는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숨겨 왔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함흥 미사일 제조공장을 확장하는 모습도 위성에 포착됐다. ‘중국 패싱’을 우려한 시진핑 정권이 대북 제재를 늦추고 있다는 징후도 있다. 누가 봐도 핵무기를 없애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폼페이오는 이번 방북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1년 내 해체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이런 일정표를 북한에 제시하진 않을 것”이라고 발을 뺐지만 충분히 생각해 볼 카드다.

많은 북한 전문가는 폐기 대상 리스트를 제출받는 게 일정표 마련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핵화 스케줄이든, 리스트 제출이든, 어느 쪽이든 고개를 끄덕일 성과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북한의 지연작전에 말려들 위험이 커진다. 이번 폼페이오의 방북 때 북한이 진정성 있는 조치를 약속하도록 한·미가 함께 설득하고 압박해야 할 것이다. 그가 빈손으로 온 뒤 사태가 악화하면 한반도는 누구도 원치 않는 벼랑 끝 위기로 되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