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환의화학이야기

녹색 화학이 새 목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인간은 적극적으로 불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짐승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불을 처음 사용했던 것은 우리보다 먼저 등장했던 호모에렉투스(직립원인)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마른 나무나 낙엽 또는 숯이 주된 연료였고, 건조 지역에서는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말려 연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땅속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석탄은 18세기 산업혁명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고, 석유의 사용은 20세기 들어서야 시작됐다. 천연가스를 안전하게 사용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화석연료는 대략 3억 년 전 지구에 번성했던 엄청난 양의 식물이 깊은 땅속에 묻혀 만들어진 잔해다. 남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아프리카.인도.남극대륙이 하나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대륙을 이루고 있던 당시의 지구는 대기 중에 넘쳐나던 이산화탄소 덕분에 녹색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의 전성기였다. 그런 지구에 놀라운 일이 닥쳐왔다. 땅이 갈라지고, 거대한 산이 솟아오르는 엄청난 일이 무려 4000만 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결국에는 동물종의 95%가 사라지고, 곤충의 3분의 1이 멸종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석연료는 지구에서 일어났던 그런 재앙의 생생한 증거다. 화석연료는 광합성이라는 녹색식물의 신비로운 화학작용을 통해 3억 년 전에 태양에서 일어났던 핵융합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는 그런 재앙을 통해 만들어진 소중한 에너지와 자원을 활용한 덕분에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평등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셈이다. 그러나 수천만 년에 걸쳐 비축된 자원을 짧은 기간에 동날 정도로 써버렸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을 심하게 훼손해 버린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원과 자원을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태양열.태양광.풍력.조력 등의 대체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수소에너지의 활용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20세기에 처음 등장했다가 사고의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의 어려움 때문에 주춤해진 원자력의 이용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우리가 과거의 오일 쇼크와는 달리 이번의 원유 가격 폭등을 큰 무리 없이 견뎌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원자력에 많은 투자를 해왔던 덕분이다.

자연과 우리에게 100% 안전하기만 한 기술은 있을 수 없다. 자연환경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포기한 환경 보호는 의미가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에너지와 자원 낭비를 철저하게 막아내고, 지속 가능한 활용 방법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자연과 우리에게 더 안전한 물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녹색 화학'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 오늘날 석유는 에너지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 개발도 대체에너지 개발만큼이나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오늘날 석유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수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