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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 딛고 「무지개 꿈」활짝|레슬링서 「은」추가한 김성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프지만 않으면 이긴다』는 얘기가 따라다닐 정도로 김성문(23·유도대4년·코리아스파이서 입사예정)은 큰 대회 때마다 병고를 치르는 지독한 불운의 사나이다.
지난 84년 LA올림픽만 해도 그랬다. 62㎏급 한국대표 최종선발전에서 김성문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인 김명기(현 대표팀코치), 김원기(LA금메달리스트), 안대현(서울올림픽 금메달)등을 차례로 누르고 대표로 선발돼 출정의 날만을 기다리며 메달획득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하늘의 시샘인지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불청객이 김성문의 몸에 스며들었다.
일체의 운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간염선고였다.
운동선수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어려서부터 꿈꾸어온 무지개빛 꿈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했다.
올림픽에의 일차 꿈은 이렇게 해서 깨어졌다.
그러나 운동을 포기하기엔 젊은 피가 분노가 되어 끓어올랐던 김성문은 감염의 조기치료에 사력을 다했고 다음해 전국체육대회를 재패, 건재를 과시했다.
이듬해 86아시안게임을 위한 대표선발전이 벌어졌다.
2년전의 악몽에서 벗어난 김성문은 일찌감치 코칭스태프들로부터 대표감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예선전을 치르면서 김성문에겐 또다시 병마가 찾아들어 무릎 연골의 부상을 당했고 그는 아픔을 참아가며 경기를 치러나가야 했다.
이 경기는 처음부터 전남 체고 레슬링부 선후배간인 김승용·김성문·이삼성(아시안게임금메달)의 3파전으로 압축되었다.
결국 서로 1승1패로 물고 물리는 혼전 끝에 막내인 이삼성에게 출전티켓이 돌아갔다. 무릎의 이상만 아니었더라면 김성문이 해냈을는지도 모른다.
결국 두번째 좌절이 되고 말았다.
김성문은 완치되지 않은 간염과 부실한 무릎 등 불안정한 건강 때문에 레슬링을 포기하기로 했다.
운동선수로서는 더이상 올라가기가 힘들다는 열등감과 좌절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김성문을 눈여겨 보아온 현 대표팀의 안천영 감독이 그를 소속팀인 코리아스파이서로 스카우트, 새 희망의 길을 열어준 것.
안 감독은 하숙생활을 하던 김성문을 자기 집에 데려다 먹이고 재우며 기술보다는 인생을 가르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성문은 안 감독으로부터 스포츠인으로서의 강한 의지, 불굴의 도전 정신 등 의미있는 삶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소질에 국내 제일의 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레슬러 김성문은 다시 태어났다. 과거 유약한 정신, 쉽게 흔들리는 승부근성이 대폭 고쳐졌다.
김성문의 잠재력은 활화산처럼 타올랐고 순식간에 국내 대회를 휩쓸며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이다.
대표팀 훈련기간 중도에 김성문의 기량향상은 코칭스태프조차 놀랄 정도로 빨랐다.
국제대회에서 화려한 입상경력이 없었던 탓에 김성문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매스컴으로부터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코칭스태프는 남몰래 김성문을 복병으로 키워왔으며 일찌감치 금메달 유망주로 꼽아놓고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김성문의 드라마는 이처럼 철저한 베일 속에서 무르익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큰 시합을 앞두고 버릇처럼 꿈을 꾸어온 김은『높은 산을 힘들이지 않고 넘어가는 꿈은 항상 길조였다』고 말하고『오늘아침에도 이 꿈을 꾸어서 승리를 예상했다』며 밝게 웃었다. <권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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