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영화] 직장 내 성희롱…그날 이후 '죄'가 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장르:드라마
등급:15세
홈페이지:(http://northcountrymovie.warnerbros.com)

20자 평:인간이 보이는 여성주의 드라마

'피고인''델마와 루이스''브룩클린으로 가는 비상구''돌로레스 클레이븐'…. 모두 성폭력을 주제로 여성주의를 환기시키는 영화다.

'노스 컨츄리' 역시 이 계보에 추가될 영화다. 앞서의 영화들보다 더 일상적인 소재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핫이슈가 되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다.

영화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성희롱 집단 소송으로 알려진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사건을 소재로 한다. 1984년 미국 미네소타 에벨레스 광산의 여성노동자 루이스 젠슨이 제기한 소송은 91년에야 종료됐다. 사건은 미국 법정이 노동계급 여성들의 손을 들어준 사례로 역사에 남았고 이후 미국 내 성희롱 방지 관련 법안 마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실화에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숨결을 불어넣은 이는 뉴질랜드 출신의 여성감독 니키 카로. 남자아이만이 족장이 될 수 있는 뉴질랜드 부족 마을에서 족장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웨일 라이더'로 주목받은 이다. 여성감독의 연출력과 샤를리즈 테론 등 아카데미에 빛나는 여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노스 컨츄리'는 2005년 뉴욕여성영화방송인협회에 의해 최고의 여성영화로 선정됐다.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조시(샤를리즈 테론). 가정 폭력 끝에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광부인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편치 않다. 경제적 독립을 결심한 조시는 친구 글로리아(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소개로 광산에서 일하기로 한다. 광산 경기가 기울어 남자들도 일자리를 잃는 마당에 여성 광부는 남자들의 밥그릇을 뺏는 '공공의 적'이다. 입사 후 조시는 성적 농담과 성추행 등 일상적인 성희롱에 노출된다. 그러나 여성 동료들은 물론이고 노조와 경영진까지 그녀의 문제제기를 외면하고 조시는 법정행을 택한다. 이번에는 그녀의 사생활이 도마에 오른다.

영화의 강점은 성희롱 소재의 전형적 패턴을 따라가면서도 단순화의 함정을 최대한 피해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희롱을 소재로 하되 관객의 분노와 눈물선을 건드리는 자극적 사건 배치에 몰두하거나 선악 혹은 남녀의 단순 대립을 강조하는 대신, 입체적인 인간드라마에 방점을 찍은 데서 드러난다. 감독 역시 "이 영화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또는 허물없는 장난과 악의적 괴롭힘의 한계에 대한 고찰"이라고 말했다.

성희롱을 그저 장난이라고 강변하는 남자들, 성희롱의 피해자이면서도 조시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 여성 동료들, 어느 순간 '골칫거리 투사'가 돼 버린 조시 등을 따라가다 보면 성희롱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또 때로는 성희롱에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그것을 참아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이 영화의 핵심적 주제와 맞닿게 된다.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여인을 연기했던 샤를리즈 테론이 '몬스터'에서의 열연에 이어 호연했다. '파고'의 프랜시스 맥도먼드, '광부의 딸'의 시시 스파이섹(조시 어머니 역), '래리 플린트'의 우디 해럴슨(변호사 역) 등 아카데미 수상자들의 관록 있는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미네소타 북부의 차가운 광산촌을 품어낸 촬영감독 크리스 멩기스의 카메라,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유명한 음악감독 구스타보 산타올라라의 선율이 이 사회파 드라마에 서정성을 더한다.

단, 재판 중 조시에게 불리하게 기울던 상황을 막판에 역전시키는 '반전의 한 방'이 조시와 갈등했던 보수적 아버지와의 느닷없는 화해로 그려진 후반부 설정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엔딩처럼 보인다. 까다로운 관객이라면 용기 있는 여성주의자의 승리와 부성애의 '감동적' 조합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