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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남편 인감 받아오래요” 별거 부부 울리는 아동수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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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동수당 신청에 왜 부모 서명 모두 필요할까 

지난달 20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서 한 부부가 아동수당을 신청하고 있다. 아동수당은 소득 하위 90% 가정의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주는 제도다. 9월 25일부터 지급된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서 한 부부가 아동수당을 신청하고 있다. 아동수당은 소득 하위 90% 가정의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주는 제도다. 9월 25일부터 지급된다. [연합뉴스]

경기 수원에 사는 백모(37·여)씨는 최근 동 주민센터를 갔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세 살 난 딸의 아동수당을 신청하려면 아이 아버지 서명도 필요하다는 주민센터 직원의 설명 때문이었다. 이혼을 준비 중인 백씨는 오랜 기간 남편과 별거 중이다. 백씨는 “수당을 받기 위해 남편에게 연락해 나오라고 해야 할 판”이라며 “왜 부부 모두의 서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득 하위 가정 아동에 월 10만원” #문 대통령 공약, 지난달부터 신청 #“헤어진 배우자에 연락 고역인데 … ” #소득 확인 위해 부모 모두 서명해야 #성남, 지급대상 확대 선심성 논란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아동수당 신청이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됐다. 아동수당은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주는 제도로 9월 25일부터 지급된다.

그런데 일부 가정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청을 위해선 부모 모두의 서명이 필요한 점 때문이다. 아동수당 신청은 오프라인은 동 주민센터에서 하는데 신청서에 부모 모두의 서명이나 지장, 인감도장이 기재돼야 한다. 온라인 신청은 복지로 웹사이트(www.bokjiro.go.kr) 또는 스마트폰 앱에서 하는데 역시 부모가 접속해 각각 공인인증서 서명을 해야 한다.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오금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은 주민들이 아동복지수당 사전 신청을 하고 있다. [사진 송파구청]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오금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은 주민들이 아동복지수당 사전 신청을 하고 있다. [사진 송파구청]

별거 등으로 부부가 함께 지내지 않는 가정에선 불만을 제기한다. 아동수당 신청을 위해 만남이 꺼려지는 배우자에게 연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씨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남편에게 연락해 주민센터로 오라는 일 자체가 고역”이라며 “온라인 신청도 남편이 공인인증서 서명을 안 해주면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남편이 가출해 아예 연락이 두절됐는데 어떻게 하냐”는 불만 글이 늘어나고 있다.

보호자 서명, 소득·재산 조회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동수당 신청엔 왜 부모 모두의 서명이 필요한 것일까. 보호자인 부모의 소득과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동수당법은 소득 하위 90% 가정에만 아동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아동수당을 받으려면 신청 가정의 소득인정액(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이 3인 가구는 월 1170만원, 4인 가구는 1436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재산만 있다면 3인 가구는 11억2000만원, 4인 가구는 13억8000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

결국 지급조건에 맞는지 확인하려면 아동 보호자의 재산을 조회해야 한다. 금융재산 조회는 본인 동의가 필요하다. 아동수당 신청자인 보호자의 서명은 이 동의를 받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당 지급을 막기 위해 보호자의 금융정보 조회는 필수”라며 “별거 등으로 부부가 떨어져 있어도 아동의 법적 보호자는 두 사람이므로 모두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혼' 증명하면 신청 가능    

지난달 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호매실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아동수당 사전 신청을 하고 있다.[뉴스1]

지난달 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호매실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아동수당 사전 신청을 하고 있다.[뉴스1]

다만 예외는 있다. 법적으로 부부라도 아이의 실질적 보호자가 배우자 중 한 사람뿐임을 증명할 경우다.
정부는 교정시설 입소, 가출, 중증질환, 가족관계 해체 등으로 보호자가 아동을 보호할 수 없으면 아동을 사실상 보호·양육하고 있는 사람만을 보호자로 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는 ‘사실상 이혼’ 상태라 볼 수 있다”며 “이를 증명할 친인척이나 지역 이·통·반장의 서명을 받으면 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 아동수당 '선심 정책' 논란 

은수미 성남시장 당선인이 9월부터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성남지역에서는 지역화폐로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성남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성남시청 앞에서 '엄마들의 비빌언덕, 성남마더센터 추진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은수미 성남시장 당선인이 9월부터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성남지역에서는 지역화폐로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성남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성남시청 앞에서 '엄마들의 비빌언덕, 성남마더센터 추진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한편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아동수당을 놓고 ‘선심성 정책’ 논란이 일고 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지난 2일 ‘아동수당 100% 지급 계획’을 결재했다. 만 0~5세 아동을 둔 성남 내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뜻이다. 성남시는 별도 조례를 만들어 시 재원으로 소득·재산 상위 10% 가정의 아동에게도 수당을 줄 방침이다.

이로 인해 성남시 조례가 상위법인 아동수당법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남시는 기존 정책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정책을 신설하는 거라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성남시 방침이 아동수당 정책을 변경한 것인지는 곧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 시장은 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동수당을 성남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해 일부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생후 12개월 이하 어린이에게 아동수당을 10만원 더 주기 위해 예산 180억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존 법의 범위를 벗어난 복지정책이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공약이어도 면밀한 검토 없이 실행하면 지방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이태윤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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