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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인사로 권력주류 교체, 문 대통령 책대로 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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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의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사용됐던 것이다. [김상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의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사용됐던 것이다. [김상선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파격 인사’ ‘파격 발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검사 경력이 없는 순수 변호사 출신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김선수(57) 변호사를 신임 대법관 후보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해 파장이 일었다.

권력지형 바꾸는 ‘뉴 노멀’ 인사 #문 대통령, 대선 전 “주류 교체” 강조 #당내 실권 잡은 친문이 지원사격 #대중들의 인식도 변화 움직임 #“민주당 보수, 정의당이 중도” 말도 #전문가 “이분법 인사, 국가 분열 우려”

이 같은 파격 인사는 일과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 주류 세력 교체를 위한 현 정부의 정교한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을 4개월 앞둔 지난해 1월 작가 문형렬씨와 함께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펴냈다.

대담 형식으로 엮은 이 책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껏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죽 써 왔는데 지금 필요한 건 그걸 뛰어넘는 것”이라며 “(내가)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主流) 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주류 교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은 “문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우리 사회의 주류 교체”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의 ‘큰 그림’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김선수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실제 대법관이 되면 한국 사회에서도 가장 보수적으로 일컬어지는 대법원에 한층 더 짙은 진보색이 입혀지게 된다. 법원 내 진보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마중물이었다면 김선수 후보는 대법원의 물길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주류 사회의 표준을 새로 정의하는 ‘뉴 노멀(new normal)’로 표현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1일 청와대 민정·인사·국민소통수석과의 오찬에서 조현옥 인사수석에게 여성의 역할 확대와 균형인사의 전방위적 확대를 강조했다. 그동안 소외됐던 계층을 여러 분야에서 중용할 수 있게 하라는 지시였다. ‘뉴 노멀’은 그동안 권력 변두리에 머물렀던 계층이 대거 권력 핵심부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시 출신이 장악한 영역에는 비(非)고시 출신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던 곳에는 여성을, 관료가 힘을 갖던 곳에는 시민단체 인사를, 보수 일색이던 곳에는 진보 인사를 투입시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 노멀’은 역사 인식에서 출발한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조선시대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 세력이 일제 때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 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여전히 기득권”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도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고, 그것은 곧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주류 역사관이었던 ‘1948년 건국론’을 부인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연장선에 있지만 노무현 정부보다 순탄히 주류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추진력의 배경에 대해 민주당의 중진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친노는 당내 비주류였다. 그러니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여당이 대통령을 계속 흔들었다”며 “하지만 친문은 주류다. 당내 주류에서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 지금 대통령을 흔들 수가 없고, 게다가 호남 토착 세력은 민주당 밖에 있다”고 진단했다. 친문 의원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여당의 권력 핵심은 친문 그룹이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 홍영표 원내대표와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와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이 유력한 문희상 의원은 모두 친문으로 통한다. 8월 25일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도 누가 당권을 잡을지가 문제일 뿐 친문이 당권을 잡을 것이란 전망에는 아무런 반론이 없다.

민주당의 하부구조 또한 문 대통령을 튼튼히 떠받치고 있다. 민주당에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은 70만 명이 넘는데, 그중 상당수는 문 대통령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취임 1년2개월이 됐는데도 국정운영 지지도가 70%를 넘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점도 큰 그림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거치면서는 대중 속에서도 ‘뉴 노멀’이 나타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보수, 민주당이 진보’라는 기존 한국 정치권의 구분을 상당수 유권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은 보수, 정의당은 중도, 녹색당이 진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당의 존재는 아예 인식 밖이다.

물론 뉴 노멀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보수 진영이 반발하는 데다 진보 진영은 더 강한 물갈이를 요구하며 압박 중이다.

문 대통령과 함께 2011년 11월 『검찰을 생각한다』를 출간한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문 대통령의 마음속에 주류 교체 의지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아직 미흡하다”며 “변화된 사회의 생각을 문 대통령이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의 발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균형성에는 못 미치는 인사”라며 “대법관도 코드 인사로 편향적인 인사가 들어간다면 과연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유지될 수 있을지 깊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뉴 노멀 인사의 이분법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학 교수는 “주류 세력 교체라는 방향을 옳다고 보더라도 인사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건 지양해야 한다”며 “자칫 국가를 이등분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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