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세계 역도수분 10년 앞서간다|한풀씩 베일 벗는 「괴력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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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동구의 소국 불가리아는 우리에게 스포츠로서 잘 알려진 나라다.
그 불가리아가 서울에서 연일 역도선풍을 일으키고있다.
우리 나라 전병관이 역사적인 은메달을 움켜쥔 52kg급에서 세계 랭킹1위 「세브달린·마리노프」가 세계신기록으로 금을 따냈고 20일에는 56kg급에서 불가리아의 복병 「밋코·그라불레프」가 엄청난 괴력으로 또 하나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가리아는 역도에 관한 한 세계 제1인자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자신과 긍지에 차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세계역도를 주름 잡게된 그 비결의 뒤안길에는 우수선수의 조기육성과 특수체질·강화훈련이 놓여 있다.
그리고 철저히 국가관리 속에 「역도기계」를 만들어 낸다. 이번 서울올림픽에 역도대표팀을 이끌고 온 수석코치 「이반·아바드지예프」씨는 한때 불가리아의 역도 비결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수선수를 조기 발굴해 육성하고, 역도선수로 선발된 이후에는 선수로서 필요한 특수체질을 만들어 줍니다.』 「특수체질 과정을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조기육성과 훈련과정을 보면 불가리아 역도 비법에 수긍 가는 대목이 있다.
역도는 10∼11세 때 시작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불가리아는 오히려 이보다 빠른 7∼8세에 선수를 발굴한다.
그들을 엄격한 스케줄의 틀 속에 집어넣고 하나의 훌륭한 역도작품을 만들어 낸다.
어릴 때 역도선수로 발굴되면 3년 동안 역도의 기초훈련만 익힌다. 잔재주 기술이나 요령은 일체 거부당한다. 철저한 FM방식의 교과서적 역도 기술을 터득한 뒤 2년 동안 테스트 과정을 밟는다.
도합 5년 동안의 연수과정(?)을 끝내면 이때서야 비로소 역도선수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심사한다. 그 심사과정에서 부적격자로 판명되면 역도선수의 대열에서 냉혹하게 탈락된다.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일단 역도선수로서 자질을 인정받게될 경우 그 선수는 국가관리 속에 들어가고, 그의 신상 일체는 국가에서 책임진다.
사회주의 스포츠 영웅은 이런 시련 속에서 제조(?)되는 것이다.
역도선수로 선발된 후에는 본격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 과정은 특수체질을 만든다고 해서한 인간의 신체구조를 역도에 가장 적합하게 뜯어고치는 작업이다.
이번에 서울에 온 불가리아선수들을 잘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아주 왜소하게 보이지만 역도선수로서 가장 이상적인 근육체질을 갖추고 있다.
20년간 국가대표코치로 숱한 금메달리스트를 조련, 「금메달. 메이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아바드지예프」코치는 외견상 훌륭한 골격의 선수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 같은 통상적인 인식을 뒤집는 그의 역도관은 선수들이 꼭 필요한 근육만을 갖추도록 하는데 뒷받침하고 있다.
꼭 필요한 근육, 바로 그것은 괴력의 원천이라는 지론이다.
「아바드지예프」코치는 『이제 경량급에서 영원히 대적할 국가는 없다』고 천명하고 『소련이 독점하고 있는 중량급도 거의 연구단계를 끝내 중량급제패도 멀지 않았다』고 섬뜩한 발언을 했다.
그는 과학적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체중 3배를 도저히 들어올릴 수 없다」는 명제를 비웃듯 깨뜨리고 역도의 천재를 만들어 냈다.
물론 이 같은 천재성에는 그 외에도 그가 밝히기를 거부하는 특수체질훈련의 노하우는 불가리아와 소련만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현재 불가리아에는 등록된 산수만 2만명이 있다.
이중 국가대표급 선수는 1천여명이나 수 차례 평가전과 각종 국내외 대회를 거쳐 20명의 에센스를 추출해 낸다.
이번 서울에 온 선수들은 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역사들이다.
국가대표는 곧 세계적인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 선발과정은 철저하기 짝이 없고 선발된 선수는 엄청난 영광을 누린다.
불가리아에서 국기로 여길 만큼 인기 있는 역도는 선수가 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회주의 스포츠 영웅」이 되려고 발버둥친다.
체육영웅으로 개인 장래가 약속된다는 사실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이다.
일단 선수로만 등록돼도 근로자나 사무직보다 4∼5배의 좋은 보수를 받고 뛰어난 공적을 쌓으면 국가영웅이 된다.
따라서 불가리아의 젊은이들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특전도 누리고 은퇴 후에는 국가에서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배려가 따른다.
불가리아는 스포츠가 곧 국력의 상징이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박스인 역도는 그래서 국력의 원천이다.
역도는 말할 것도 없이 불가리아의 간판 종목이다.
이 때문에 불가리아 국민들의 역도에 대한 기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올림픽에서도 불가리아가 종합 4위를 하느냐 못 하느냐는 한마디로 역도의 성패여부에 달려있다.
불가리아가 역도강국이 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국민들의 역도에 대한 관심도 8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이는 세기적인 역도천재 「나임·살라마노프」가 그 불가리아 땅에서 탄생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터키로 망명한 「나임·살라마노프」(현재 「슐레이마노글루」)-.
그가 불가리아 국민들에게 역도의 결정적인 붐을 일으키는 주역 역할을 해냈다.
20일 금메달을 딴 「밋코·그라불레프」의 전임코치인 「루세프·얀코」씨도 그가 망명한 사실을 접어두고 『「살라마노프」는 아직도 우리 국민의 영웅이다. 불가리아 젊은이들은 「살라마노프」와 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말했다.
망명 후 터키의 대통령 양자로 들어간 뒤 이름까지 바꾼 그는 「아바드지예프」의 지도아래 자신의 체중 3배를 들어 세계 역도계를 경악시켰다.
그는 현재 56kg·60kg급 등 두 체급에 걸쳐 5개의 세계 최고기록을 보유한 아마도 전무후무할 역도 왕이다.
불가리아의 터키 소수계 민족차별에 불만을 품고 망명했던 그였지만 불가리아는 아직도 「살라마노프」에 대한 연민의 정과 그를 잊지 못하는 향수가 서러있다.
한편 올림픽 역도에서 52년 이후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딴 국가는 모두 7개국에 불과하다.
52년 첫 출전한 소련이 그후 금메달 71개중 35개를 휩쓸어 갔다.
역도에 뒤늦게 뛰어든 불가리아는 72년 뮌헨올림픽(3개), 76년 몬트리올올림픽(3개), 80년 모스크바올림픽(2개) 등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밖에 따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불가리아는 10체급 중 절반인 5개 체급을 휩쓸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에서도 소련을 누르고 최다 금메달 국가로 달음질치고 있다. 3∼4년 사이 기량에서 혁명을 일으킨 불가리아는 82.5kg급 이하의 경량급 6체급에서 지금도 기록으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해 열렸던 9차례의 세계선수권대회 성정을 종합한 세계랭킹에서도 불가리아의 독식으로 끝났다.
다만 중량급에서만 소련의 「유리·자차레비치」에게 랭킹1위의 자리를 넘겨주었을 뿐이다.
2∼4위는 불가리아선수들이 모두 차지했고 5위를 빼고 난 6∼8를 모두 석권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세브달린·마리노프」(52kg급) 「네노·테르지스키」 「밋코·그라블레프」(이상 56kg급) 「스테판·토푸로프」(60kg급) 「미하일·페트로프」「안구엘·안구엘로프」(이상 67.5kg급) 「보리슬라프·기디코프」 「알렉산데르·바르바노프」(이상 75kg급) 「아센·즐라테프」(82.5kg) 「이반·차카로프」(90kg급) 「스테판·보테프」(1백10kg) 등이다.
이중 이번에 서울에 온 눈에 띄는 강자들은 금메달을 딴「마리노프」 「그라블레프」를 비롯, 「토푸로프」 「안구엘로프」 「기디코프」 「즐라테프」 「차카로프」 「보테프」 등 8명으로 이 가운데 적어도 4∼5명의 선수가 금메달 획득이 유력하다. 『불가리아 역도는 세계역도수준을 10년 앞서가고 있다.』
국제역도연맹 「타마스·아얀」사무총장의 한마디 코멘트는 불가리아 저력을 잘 요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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