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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백년손님이라지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51)

아들딸을 대학에 보내면 부모 역할은 끝나는 줄 알았다. 이때쯤이면 진학 뒷바라지에 진이 빠진 엄마들은 일종의 허탈감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다고들 했다.

그건 말하기 좋아하는 전문가, 별난 것에 혹하는 매스컴이 떠드는 소리에 불과했다. ‘빈 둥지 증후군’은 있어도 잠깐이었다. 다시 아들이라면 군대 뒷바라지를 거쳐야 하고, 이내 취업문제에 신경 써야 했다. 자기소개서는 통과됐는지,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무관심한 듯 촉각을 곤두세우고 행여 낙방하면 기운을 잃지 않도록 심기를 보호해줘야 했다.

빈둥지증후군.  [일러스트 김회룡]

빈둥지증후군. [일러스트 김회룡]

취업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결혼문제가 닥친다. 난리 같은 결혼식을 치르고 나도 맘에 걸리는 건 남는다. 딸을 보낸 부모는 손주가 늦으면 은근히 사돈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손주를 봐도 귀여운 것은 잠깐,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은 아이 돌보기가 부모 몫이기 십상이다.

이게 보통 부모의 행로라 여겼는데 뜻밖의 문제가 불거진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다. 사위가 혹이 됐다 했다.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가정에도 충실하기에 딸과 손녀랑 오사바사하게 사는 줄 알았더니만 사위가 한눈을 팔았던 모양이다. ‘모양’이란 건 전해 들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 ‘물증’은 없는 탓이어서다.

영업 업무를 맡은 그 사위는 접대를 하는지 받는지 술자리가 잦았는데 딸이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나. 휴대전화에서 여성의 미심쩍은 문자도 수차례 확인했고, 때로는 밤늦게 전화를 하면 음악 소리와 더불어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등 심상찮은 징후를 보였단다.

추궁과 일부 시인 등 일이 커진 뒤 딸이 심리치료를 받는 통에 알게 된 친구는 그랬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은데…”라며 딸 편을 들 수도, 사위를 옹호할 수도 없다고 난감해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사람은 그런 걸 대범하게 넘어갔는데 요즘엔 워낙 이런 문제에 예민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업 엄무를 맡은 친구의 사위가 술자리가 잦아지자 친구 딸은 심리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일러스트 김회룡]

영업 엄무를 맡은 친구의 사위가 술자리가 잦아지자 친구 딸은 심리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일러스트 김회룡]

그날 이 이야기를 한자리서 듣던 친구들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 결혼했으면 한 가정의 책임진 성인들인데 뭘 그런 것까지 신경 쓰나? 부모는 뭐 무한책임인가”가 대세였다.

결정타는 딸이 없는 친구에게서 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사위를 불러 한마디 해. 불가피한 술자리를 이해는 하지만 그걸 들킨 게 더 잘못이라고.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일러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백년손님’이라는 사위가 어째 ‘가지’로만 보이는지? 딸 가진 부모라서인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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