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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뮤지컬 '최승희'공연 앞둔 김성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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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 이름에 '별(星)'이 있잖아요. 제가 '스타'로 살아갈 것을 부모님이 예견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무대에서 한 세상 불꽃처럼 살아가라고요."

배우 김성녀(金星女.53)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당놀이다. '춘향전''심청전' 등 1980년대부터 꾸준히 맥을 이어온 마당놀이의 주인공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金씨가 전통적인 작업에만 매달려온 것만은 아니다. '돈키호테''영웅만들기''7인의 신부들' 등 뮤지컬로 각종 상을 휩쓸기도 했다. 장르의 벽을 넘은 열정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다룬 뮤지컬 '최승희'(9월 26일~10월 12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최승희 역을 맡은 것이다. 최승희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무용.TV 드라마.영화.다큐멘터리 등으로 제작됐지만 무대공연은 처음이다.

"세계적인 춤꾼, 사상가인 안막과의 사랑, 월북, 그리고 숙청까지…. 최승희의 일생은 상당히 드라마틱합니다. 그걸 언젠가는 무대에 올리겠다고 남편(손진책 미추 대표)과 다짐한 지 벌써 14년이 됐어요. 늙기 전에 해야겠다 싶어 일을 냈지요."

金씨는 이를 위해 몸무게를 8㎏이나 줄였다. 지난 3개월간 식이요법을 통해 무리하지 않고 살을 뺐다. 얼마 전 팸플릿 촬영을 위해 최승희처럼 단발머리로 분장했을 때 스태프들 사이에선 "(최승희와)똑같다"라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는 최승희가 남편 안막과 월북한 이후의 시기인 30~50대까지의 삶을 다룬다. 안막과의 운명적 만남과 몰락, 딸과의 갈등 등 '예술가 최승희'의 이면에 담긴 '인간 최승희'의 모습을 그린다.

金씨는 극중에서 최승희의 춤 세편을 선보인다.'노사공''에야라노아라''보살춤' 등이다. 춤 이야기를 하던 金씨는 "특히 '보살춤' 때문에 살을 뺄 수밖에 없었어요. 배꼽이 보이잖아요"라며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金씨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최승희는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예요. 외모가 저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하지만 외모보다 그의 삶에 들어가면 저와 비슷한 게 더 많아요. 그건 예술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건데…."

연출가인 남편과의 작업, 춤과 노래로 무대에 서는 일 모두 최승희와 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끌린 것은 딸과의 애증 관계다. 그는 최승희가 대외적 활동 때문에 딸에게 신경쓰지 못한 대목이 특히 자신과 비슷하다고 했다. 金씨의 딸 지원(27)씨는 영국에서 뮤지컬 배우 수업 중이다.

"작품 중에 최승희가 딸에게 '얘야, 엄마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구나. 내 마음은 아직도 춤을 추고 있단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딸에게 하는 이야기들이 어찌나 제 마음과 똑같던지, 대사를 할 때마다 눈물이 나와서 걱정이에요."

인터뷰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제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金씨는 현재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다. 그는 가을 공연을 앞두고 이것저것 챙겨주던 끝에 "밥은 먹었니"라고 제자에게 자상하게 물었다.

인터뷰 도중 "나처럼 연륜 있는 여자가 아니면 최승희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당찬 모습을 보인 그에게서 느껴진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박지영 기자<nazang@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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