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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회사가 갑? 갑질하는 꼰대 없는 이 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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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철저한 주 5일제로도 모자라 이미 2015년부터 매주 월요일은 오후 1시에 출근하는 4.5일제 도입. 2017년엔 평일 오후 6시30분이던 퇴근 시간을 30분씩 단축하고도 임금 삭감은커녕 점심시간 1시간 30분 보장에 읽고 싶은 책이라면 여전히 무제한으로 도서구입비 지원…. 구멍가게도 아니고, 계획대로 올해 400명을 신규 채용(이미 200여 명 채용)하면 직원 1000명을 넘기는 큰 규모인데도 개인에 대한 성과평가 등급은 없는 회사.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9년차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들(이하 배민) 얘기다.

배달의민족 사무실. 오른쪽 유리창 안쪽은 개인 사무 공간이지만 나머지 공간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다. 빈백에 기대 앉으면 창밖의 올림픽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사무실. 오른쪽 유리창 안쪽은 개인 사무 공간이지만 나머지 공간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다. 빈백에 기대 앉으면 창밖의 올림픽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 창밖으로 보이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 창밖으로 보이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안혜리 기자

배우 류승룡을 내세운 TV광고를 시작으로 잡지와 버스, 옥외 간판 등에서 마주치는 배민 특유의 B급 감성 충만한 재기발랄한 광고에다 이런 꿈 같은 근무환경이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를 오해한다. '다니기' 좋은 회사라고. 하지만 아니다. 이 회사는 '일하기' 좋은 회사다. 짧은 근무시간만 보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최고 가치로 삼는 복지혜택 좋은 회사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출근시간인 오전 9시에서 단 1분의 지각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지각하면 그날 이후로 대표에게 출근 메일을 써야 하고, 반복되면 퇴사를 권유받는다)로 근면성실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규율 엄격한 회사다.

배달의민족은 매달 잡지 하나씩을 골라 그 잡지에 걸맞는 기발한 카피를 내세워 광고를 하는 이른바 '잡지테러'를 해오고 있다. 전 직원이 참여해 경영 관련 잡지엔 '보이지 않는 손 짜장', 와인 잡지엔 '와인 파인 땡큐 안주?'라는 카피를 뽑아낸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은 매달 잡지 하나씩을 골라 그 잡지에 걸맞는 기발한 카피를 내세워 광고를 하는 이른바 '잡지테러'를 해오고 있다. 전 직원이 참여해 경영 관련 잡지엔 '보이지 않는 손 짜장', 와인 잡지엔 '와인 파인 땡큐 안주?'라는 카피를 뽑아낸다. 안혜리 기자

지방선거로 휴일이었던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맞은편에 있는 텅 빈 배민 사옥을 찾았을 때도 김봉진 대표는 이 오해부터 바로잡길 원했다. 그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지금같은 조직문화가 만들어진 것이지 그저 직원들에게 자유로운 문화를 누리게 해주려는 목적에서 여러 복지혜택을 도입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복지나 자유로운 기업문화에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절대로 뽑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배달의민족의 방이동 사옥 곳곳에 붙은 근무 규칙. 제1규칙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는 단 1분의 지각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규율을 잘 드러낸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의 방이동 사옥 곳곳에 붙은 근무 규칙. 제1규칙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는 단 1분의 지각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규율을 잘 드러낸다. 안혜리 기자

4.5일제나 카페  같은 인테리어의 근무환경 등은 모두 철저한 성과 중심 조직으로 굴러가기 위한 경영 실험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상대평가식 개인 고과를 안매긴다뿐이지 팀 단위의 평가는 오히려 냉정하다. 그는 "열심히 한 것만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며 "회사는 성과가 우선"이라고 늘 강조한다.

배달의민족 사옥. 층마다 컨셉트는 다르지만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나오도록 꾸몄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는 시도다. [사진 배달의민족]

배달의민족 사옥. 층마다 컨셉트는 다르지만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나오도록 꾸몄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는 시도다. [사진 배달의민족]

김 대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율과 동시에 규율을 강조하고, 직원들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요구까지 맞춰주는 동시에 규칙을 따르지 않을 거면 차라리 입 다물고 떠나라고 서슴없이 요구하는 이 모순 덩어리같은 회사의 실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카페같은 인테리어에 재미난 카피가 곳곳에 붙어있는 배달의민족 사옥. [사진 배달의민족]

카페같은 인테리어에 재미난 카피가 곳곳에 붙어있는 배달의민족 사옥. [사진 배달의민족]

『배민다움』을 쓴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런 배민에 걸맞는 인재상을 '자발적인 노예'로 표현한다. 겉으로는 놀이터처럼 즐거워 보이지만 급성장하는 스타트업답게 이곳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기꺼이, 아니 즐겁게 일하며 회사가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쓴다. 이게 가능한 건 직원을 노예처럼 부려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상전처럼 모셔서다. 바뀐 세상 물정 모르고 옛 타성에 젖어 아랫사람 맘 상하게 하면서 일 시키는 '꼰대문화'가 여기엔 없다. 설령 꼰대는 드물게 있을지언정 그런 문화는 없다.

안혜리의 뉴스의 이면 #'다니기' 좋은 회사 아닌 '일하기' 좋은 회사 배민을 가다

매주 수요일 오전엔 김봉진 대표(맨 오른쪽 검정티셔츠 입은 사람)가 직원들과 만나는 '우수타'시간이 있다. 소소한 불만과 건의사항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사진 배달의민족]

매주 수요일 오전엔 김봉진 대표(맨 오른쪽 검정티셔츠 입은 사람)가 직원들과 만나는 '우수타'시간이 있다. 소소한 불만과 건의사항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사진 배달의민족]

꼰대 아닌 척 흉내만 내는 '청바지 입은 꼰대'가 발붙일 수 없는 배민의 기업문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장이 김 대표의 타운홀 미팅 격인 '우수타(우아한 수다타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수요일 오전에 열리는데, 전날까지 익명으로 각종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김 대표가 다 같이 공유하고 답할 내용을 골라 대화를 나눈다. 90%이상이 소소한 불만들인데, 굳이 '꼰대'적 시각이 아니라도 황당하다못해 기가 막히는 내용도 적지 않다. '팀장이 회식비를 팀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쓴다''일 끝내고 어느 팀원이 팀장에게 밥 먹자고 했다고 팀원 전부 데리고 나가 식사하자는 건 부담스럽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성희롱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회식 때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 직원이 팀장 바로 옆에 앉아 술 따르는 모습을 본 것도 성희롱이니 시정해달라'.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 곳곳엔 '헐'같은 B급 감성 충만한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 곳곳엔 '헐'같은 B급 감성 충만한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다. 안혜리 기자

웬만한 기업 같으면 "요즘 애들이란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불만만 많아서, 쯧쯧"하고 말겠지만 여기는 다르다. 어떤 불만에도 타협점을 찾는다. 팀 회식비 사용에 불만이 있다면 해당 부서장을 설득해 회식비 내역을 팀원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갑작스런 식사에 불편해하는 팀원이 있다면 그 팀 회식은 최소 1~2주 전에 미리 예고하라고 조율한다. 이 과정에서도 일방지시가 아니라 당사자들 의견을 존중한다. 아무리 절차가 민주적이라도 세상을 너무 다르게 보는 '요즘 것들' 때문에 지목받은 윗사람은 불쾌하고 얹잖을 수 있다. "미치겠다""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팀장도 많다. 그럴 때마다 김 대표는 이런 말을 한다. "얘네들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5년 뒤면 더 이상한 애들이 몰려온다. 그때를 대비한 연습상대로 생각하라. 더 좋은 세상을 향해 가는 과정 아니겠나. "
대한상의와 함께 기업의 꼰대문화를 분석했던 서제희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도 "부장 등 중간간부들이 직원 요구를 받아줘야 하느냐는 식의 수동적 개념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그들의 역량을 활용하기 위한 필요사항으로 봐야 한다"며 "젊은 직원들에게 성과 책임도 함께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 8층 CEO직속 공간. 김봉진 대표도 공용테이블을 사용한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 8층 CEO직속 공간. 김봉진 대표도 공용테이블을 사용한다. 안혜리 기자

CEO 전용 책상은 없지만 은밀한 미팅이 많은 업무 특성상 CEO전용 회의실은 따로 있다. '봉'이라고 써진 방이 그 회의실이다. 안혜리 기자

CEO 전용 책상은 없지만 은밀한 미팅이 많은 업무 특성상 CEO전용 회의실은 따로 있다. '봉'이라고 써진 방이 그 회의실이다. 안혜리 기자

회사 규칙을 담은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몽촌토성 편'의 3번 항목에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명시해 전 조직간 팀워크를 강조하지만 김 대표는 정작 팀장들에게 "팀원들과 친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한다. 조직 상하관계에서는 친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진짜 친할 수는 없기에 신뢰 관계를 사적 친밀도가 아닌 실력으로 쌓아야 잡음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배민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회사의 주력 계층인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말해 공정함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공평한 기회를 누리고 배려받는 조직을 만들어야 열심히 일한다는 걸 아는 거다. 최근 사회적으로 여자 화장실 몰카 문제가 불거졌을 땐 직원 요청이 없었는데도 선제적으로 사옥 전 층 여자 화장실을 놓고 몰카 일제 점검을 하기도 했다.

휴게실 벽면에 붙어있는 각기 다른 크기의 직원 사원증 사진들. 2017년 2월 방이동 사옥으로 옮기면서 당시 근무하던 모든 직원의 사진을 다 붙여 놓았다. 크기와 위치는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김봉진 대표 사진이 구석에 작게 붙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안혜리 기자

휴게실 벽면에 붙어있는 각기 다른 크기의 직원 사원증 사진들. 2017년 2월 방이동 사옥으로 옮기면서 당시 근무하던 모든 직원의 사진을 다 붙여 놓았다. 크기와 위치는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김봉진 대표 사진이 구석에 작게 붙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안혜리 기자

직원은 관리하는 게 아니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김 대표 생각이 반영된 배민만의 독특한 조직도 있다. 피플팀이다. 여느 기업 인사팀과는 다르다. 단 1명도 소외되지 않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맛있는 거 사주고, 고민 들어주고, 생일 챙겨주고, 아프면 병원에도 같이 가 주는 게 피플팀의 주 업무다. 안연주 피플팀장은 "모두 업무가 빡 센 데다 스타트업 특성상 변화가 많다보니 업무는 점점 많아진다"며 "피플팀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복지=성과'는 아니지만 배려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한 직원들의 높은 충성심은 수치에 그대로 반영된다. 2017년 매출 1626억원에 영업익 21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배, 10배 늘었다.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은 층마다 기본 구조와 스포츠 종목을 테마로 한다는 점은 같지만 인테리어는 각기 다르다. 어느 층이든 '인스타그래머블'하게 꾸몄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방이동 사옥은 층마다 기본 구조와 스포츠 종목을 테마로 한다는 점은 같지만 인테리어는 각기 다르다. 어느 층이든 '인스타그래머블'하게 꾸몄다. 안혜리 기자

소통 방식 뿐 아니라 사옥 공간에도 배려가 숨어 있다. 김 대표는 "2층부터 18층까지 사옥의 매층마다 각기 다른 컨셉트의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민 건 공간에 따라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관찰하기위해서"라고 굳이 의미를 줄여 말했다. 7층의 CEO 부속 조직을 제외하고 전 부서가 제비뽑기로 6개월마다 사무실을 옮기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40대들이 했던 것처럼 칸막이 쳐진 독서실 같은 환경이 아니라 적당한 음악과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 공부했다"며 "그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야지 회사에 들어왔다고 갑자기 다시 칸막이를 만들면 안 된다"는 말에는 회사가 직원에게 맞추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배달의민족 사옥 각층 사무실 앞에 붙어있는 부서 안내판. 6개월마다 제비뽑기로 사무실을 옮기는데 그때마다 부서 이름이 쓰인 자석을 뗐다 붙였다만 하면 된다. 안혜리 기자

배달의민족 사옥 각층 사무실 앞에 붙어있는 부서 안내판. 6개월마다 제비뽑기로 사무실을 옮기는데 그때마다 부서 이름이 쓰인 자석을 뗐다 붙였다만 하면 된다. 안혜리 기자

산업화 시대 공장처럼 회사는 생산성을 빌미로 직원을 착취하는 갑이고 직원은 어쩔 수 없이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을이 아니라는 걸 배민이 잘 보여준다. 진작에 자발적으로 주35시간을 도입한 배민도 7월 시행하는 주52시간 근무제는 어려운 과제다. 김 대표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7월 지나서 (어쩔 수 없는 법 위반으로) 교도소에서 보자고 농담을 할 정도"라고 말한다. 정부가 배민을 정부 시책을 잘 따르는 모범사례로 홍보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구시대적 갑을관계 관점으로 노사를 바라보느라 IT기업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