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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대표 손 떼고 원칙만 따르는 ‘노터치’ 공천이 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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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의 정치 속으로

한국당 ‘혁신비대위’가 성공하려면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자신이 제안한 혁신 비대위 구상에 대해 반대파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며 격론이 벌어지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자신이 제안한 혁신 비대위 구상에 대해 반대파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며 격론이 벌어지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오종택 기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의 ‘혁신 비대위’ 구상이 25일과 26일 초선~3선 의원들의 추인을 받았다. 일단 궤도에 들어선 셈이다. 하지만 반대파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친박 정우택 의원은 25일 “김 대행과 가까운 분들이 비대위 준비위원들로 구성됐다. 아바타 비대위원장이 나올까 걱정된다”고 비판했다.

김종인보다 센 비대위원장 발탁 #임기는 본인 마음, 권한 무제한 부여 #2년 뒤 총선서 공천심사위원장 맡겨 #공천 물갈이 보장하고 진정성 실현 #한국당, 2년전 김종인 공천 배워야 #전략공천 일절 배제해 잡음 없애 #박근혜 천막당사 공천도 교훈

김 대행을 국회 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향후 구상을 들었다.그는 비대위원장이 정해진 임기 없이 무제한의 권한을 부여받아 인적청산과 2020년 총선 공천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하겠으며 비대위원장이 개혁성과에 따라 당 대표와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도록 할 방침임을 밝혔다.

비대위원장은 2년 뒤 총선,4년 뒤 대선에서 문재인 세력이 미는 후보의 약점을 잘 알고 그를 꺾을 경쟁력 있는 인물로 인선할 구상임도 암시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자신은 당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비대위가 언제까지 활동하나
“전당대회를 60일 이내에 열 상황이 전혀 아니다. 당내에 국민의 신망을 얻을 리더십이 전무한데 무슨 전당대회냐. 완전히 새로운 리더십,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서 문재인 세력을 꺾을 새로운 리더십을 외부에서 비대위원장으로 데려와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세력의 약점을 잘 알아 이길 능력이 있는 인물을 고려 중이다. 의원들이 그 사람을 새 리더십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가 내년께 열릴 전당대회에 나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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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들은 김 대행이 아바타 비대위원장을 내세워 당권을 먹겠다는 속셈이라는데
“그런 오해를 막기 위해 나는 어떤 경우든 당권에 도전하지 않겠다. 분명히 밝힌다. 당권 도전 안 한다. 지금 당 지도부는 전원이 사퇴하고 나뿐이다. 나까지 사퇴하면 최다선 연장자가 대표 대행이 되는데 그게 친박이 극력 비토하는 김무성(6선)이다. 얼마나 난센스냐. 결국 원내대표 사퇴론의 본질은 비대위 체제로 가지 말자는 거다. 어차피 비대위는 원내대표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다. 비주류들이 비대위원장 고발하고, 맞짱 뜨고 하다가 공멸하게 된다. ”
혁신 비대위의 임기는
“미리 기간을 못 박으면 모시는 사람(위원장)에게  도리가 아니다. 오직 위원장이 판단할 문제다. ”
공천과 당조직 개혁은
“다 비대위에 일임한다. 비대위가 개혁에 성공하면 당장 비대위원장이 새 리더로 뜰 것이다. 그러면 그가 전당대회에 나와 대표가 돼 공천개혁을 이끌고, 대선에 나가는 것도 다 가능하다. 거기 제한을 두면 안 된다. (그가 대표가 안 돼도) 총선을 앞두고 실권을 가진 공천심사위원장직을 주는 등 공천 개혁을 완수하게 뒷받침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지금은 당헌 당규상 대표가 대선 출마를 못 하게 돼 있는데 그것도 바꿀 것이다. ”
주요 비대위 역사

주요 비대위 역사

잘만 되면 신임 비대위원장은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낸 김종인보다 더 큰 칼을 휘두르겠네.
“김종인보다 2배,3배 더 큰 힘을 줄 것이다. 오죽하면 내 목부터 치라고 했겠나. 어려운 집에 오신 분에게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다 손보게 하겠다.”
김종인 모델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성공했지 않나. 모든 걸 버리고 외부 인사에게 전권을 주니 민심이 돌아섰다. 우리도 이 길밖에 없다.그때보다 몇배 더 강력한 김종인이 필요하다”
그러면 당신도 문재인처럼  물러나서 뒤에서 받쳐주면 되는 거 아니냐.
“나는 당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또 앞으로 당 대표에 나갈 사람도 아니다. ”

김 대행의 초점은 김종인이었다. 2년 전 총선에서 180석을 호언장담하던 새누리당을 누르고 더불어민주당이 1당에 오르는데 김종인 비대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요인은 뭘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봤다.

한국당이 ‘김종인,김종인’ 하고 있다.
“2016년 총선에 앞서 2012년 대선을 보자. 당시 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당의 정강·정책을 확 바꿨다. ‘보수’란 말 없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그게 시대가 요구하는 건데 새누리당은 그런 노력은 전혀 않고 빈둥대는 보수정당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효과를 봐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본다. 선거 뒤 청년들이 ‘새누리당 싫지만 경제민주화 한다니까 한번 찍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게 얘기했다,”
그리고 4년 뒤 총선에는 새누리당을 떠나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공약해놓고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민주당에 가서 능력 있는 대안 야당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기 전에 문재인 대표에게 ‘내게 전권을 주지 않으면 바로 떠난다’고 했고 문 대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라’고 해 응했다.”
공천과정에서 카리스마를 보였다.
“원칙대로 한 것뿐이다.카이스트 총장 출신인 홍창선씨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그에게 ‘우리 원칙대로 합시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공천심사를 일임했다. 공심위는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컷오프 대상자를 정했는데 반발이 심할 경우 내게 처리를 부탁했다. 난 그러면 시장바닥을 직접 돌며 그 인물 평판을 묻고 다녔다. 시민들이 ‘그 사람 안된다’고 답하면 그에게 가서 컷오프를 통보했다. 이해찬,정청래 같은 사람들이 그래서 컷오프된 이들이다. 내게 불만이 많겠지만 원칙대로 처리할 수 밖에 무슨 길이 있나(정청래 당시 의원은 여론조사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잦은 막말로 물의를 일으킨 점 때문에 탈락했다. 일각에선 인기가 좋으니 경선후보로 넣어주자고 했지만 홍창선 위원장이"물의를 빚은 인물은 컷오프가 원칙"이라며 잘랐다고 한다.) ”
전략공천은 어땠나
“최험지인 강남과 송파 등엔 전략공천이 불가피해 엄선해 꽂은 결과 최명길,전현희 후보가 다 당선됐다. 그밖엔 전략공천을 일절 하지 않고  경선을 실시했다. 중진 의원들이 불만을 표했지만 투명한 공천을 위해 밀어붙였다. 그 결과 민주당 사상 가장 잡음 없는 공천이 됐다.”
문재인 대표가 비례대표나 지역구 후보에 1~2명만큼은 자신의 측근을 꽂아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니다. 그런 적 없다. 대표가 공천에 관여 안 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당은 비대위가 구성되도 총선이 2년 가까이 남게 되는데.
“중요한 건 비대위가 공천 개혁을 어떻게든 쥐고 나가야 한다는  거다.지금 아무리 개혁을 해봤자 2020년 총선 공천을 그르치면 도로 망한다. 비대위가 반드시 공천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차기 지도부는 그걸 총선 국면에서 관철해야 한다.”
한국당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원칙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 자꾸 사익을 챙기니까 안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거다. 지금 국회에서 실력을 보여야 한다. 정책이나 입법을 갖고 승부해야지 내부 투쟁에만 골몰하면 더 외면을 받을 뿐이다.”

당시 비대위에서 활동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당시 두가지 공천 원칙을 정했다. 첫째가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이 좋아 한다고 드러난 후보,둘째는 부패 등으로 물의를 빚지 않은 후보를 뽑는다는 거였다”고 했다. 비대위와 공심위는 오로지 이 원칙에 따라 공천을 했고, 기준 미달자는 가차없이 컷오프 시켰다. 주목되는 것은 탈락자들 반응이다. 불만은 많았지만 비교적 순순히 승복했다는 것이다. '솔선수범'케이스도 적지 않았다. 문재인 최측근이던 노영민 의원(현 주중대사)은 의원실에서 카드단말기로 피감기관에 저서를 판 의혹으로 물의를 빚게되자 자진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영선 의원은 “오로지 원칙대로만 공천한 결과 양질의 후보들이 본선에 올라 총선에 이기고 당의 경쟁력도 높아졌다”고 했다. 툭하면 지도부를 성토하고 의원들끼리 싸우던 열린우리당식 거친 문화를 요즘 민주당에서 보기 힘든 것도 공천이 투명하게된 결과란 얘기가 나온다.

한국당에선 김종인 비대위만 볼 게 아니라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4년 꾸린 ‘천막당사 비대위’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당시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은 50석도 못 얻으리란 불안이 팽배했다”며 “그런데 박근혜 대표가 긴급등판하면서 공천에 단 1%도 관여하지 않고 김문수,홍준표 등 공천위원회 간부들에게 전권을 맡긴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문수 등은 텃밭인 서초구에 정치초년병이자 여성인 이혜훈을 전략공천해 당선시켰다. 또 박 대표가 긴급 영입한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비례대표 1번을 받은데다 다른 비례대표 후보들을 죄다 공천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KDI (한국경제연구원) 사단' 이라고 불리는 박사 출신 지식인들이 대거 공천돼 이후 이명박 정부의 인적 자원의 저수지가 됐다. 기존 의원들이 공천을 주도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예상을 깨고 121석을 획득, 선전했다. 더 중요한 것은 양질의 의원들이 공천된 결과 3년 뒤 대선에서 승리할 기반이 마련된 점이다.

박영선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건 2016년 비대위가 공천을 잘한 것이 한 원천이 됐고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긴 것 역시 2004년 총선에서 천막당사 비대위가 공천을 잘한 것이 원천이 됐다"고 했다. 그는 “한국당은 대표가 공천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파격적인 인물들을 발탁하게 한 2004년 비대위 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