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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경제단체의 배신인가 혁신의 몸부림인가 … 경총의 내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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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의 세상만사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장 입구에서 직무정지 조처를 당한 송영중 상임부회장(오른쪽)이 손경식 경총 회장과 조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장 입구에서 직무정지 조처를 당한 송영중 상임부회장(오른쪽)이 손경식 경총 회장과 조우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 관계 최전선에서 사용자를 대변하는 경제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내홍을 겪고 있다. 송영중 상임부회장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송 부회장은 지난 4월 영입 당시부터 ‘친노동 성향’이라는 세평이 따랐다. 매파 전임자(김영배 부회장)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인선 때문에 ‘코드 인사’라는 논란과 ‘혁신 노력’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취임 후 기존 경총 조직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지난달 하순 불거진 ‘최저임금 산입 범위 처리’ 논란은 수면 아래 갈등이 표면화된 계기가 됐다. 경총이 국회 논의 대신 최저임금위원회에 다시 부쳐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에 동조했다가 파문이 커졌다. 경총은 이틀 만에 입장을 번복했지만, 송 부회장 책임론이 불거졌다. 현재 그는 직무 정지 상태다. 경총은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는 거부하고 있다.

송영중 부회장 취임부터 내부 갈등 #국회 최저임금 산입 문제로 표면화 #“스타일 안 맞고 조직 이해도도 낮아” #“김영배 체제 안주해 시대 변화 거부” #“본연 임무 충실” vs “시대 변화 수용” #달라진 노사관계 지형이 낳은 진통

송영중 부회장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대한 국회 논의를 거부한 일. 둘째, 6월 첫째 주에 있었던 ‘재택근무’ 논란. 셋째, 취임 이후 계속돼온 경총 사무국과의 갈등. 경총을 찾아가 만난 관계자와 외부에서 인터뷰한 송 부회장의 설명은 팽팽하게 맞섰다. 경총 관계자는 “송 부회장이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어 같이 일하기가 힘들다”며 고개를 저었고, 송 부회장은 “경총 사무국이 기존 체제에 안주한 채 시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의 주장을 쟁점별로 정리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처리 논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장 입구에서 직무정지 조처를 당한 송영중 상임부회장(오른쪽)이 손경식 경총 회장과 조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장 입구에서 직무정지 조처를 당한 송영중 상임부회장(오른쪽)이 손경식 경총 회장과 조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총 관계자=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합의가 미뤄지자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국회 처리 합의를 했다.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과 현금성 숙식비를 산입하는 방안이다.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현물을 포함해야 한다는 경총 주장에는 못 미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합의안이 최대치라고 판단했다. 노조가 약하거나 없는 중소기업 경우, 상여금 지급 방식을 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실익이 있다고 봤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도 전화를 걸어와 합의안 수용을 압박해왔다. 사무국에서는 송 부회장에게 국회 합의안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건의했지만, 송 부회장은 ‘사회적 합의’가 소신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위 재논의를 고집했다.

송 부회장=두 당의 합의안으로 대기업이 실익을 보려면 단협을 바꿔야 하는데, 노조가 쉽게 동의해주겠나. 갈등만 커진다. 이 때문에 다시 사회적 논의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무국에는 노동계와 ‘오월동주’일 뿐이라고 설명해줬다. 겉만 노동계 주장과 같다는 이유로 ‘노동계 2중대’로 몰아세우는 것은 당치도 않다. 현대차 윤여철 부회장도 나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독단적인 결정도 아니었다. 여야 합의가 진행되고 있던 5월 19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6시쯤 손경식 회장이 사무실에 나와서 임원들과 상의한 끝에 노조와 대화를 계속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나는 노동부를 떠난 지 9년이나 됐다. 나를 친노동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재택 근무 논란

경총 관계자=최저임금 산입 논란으로 조직이 어수선해졌다. 이를 계기로 송 부회장의 취임 이후 조직 내부의 문제점이 손 회장에게 보고됐다. 하루는 송 부회장이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악수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자진 사퇴설이 돌았다. 송 부회장이 사퇴의 뜻을 밝히자 손 회장이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하시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손 회장의 화법으로 볼 때 완곡하게 사퇴를 권고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그 다음 주 사내 게시판에 "경총도 ‘워라밸’(일과 가정의 균형)을 도입할 때”라는 글을 올리고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송 부회장=각종 논란으로 심신 피로를 호소하자 손 회장께서 "며칠 쉬어라”고 말씀하셨다. 마침 이슈가 되고 있는 ‘워라밸’ 홍보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월요일(6월 4일)부터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실 밖에서 전화와 PC를 이용해 내내 보고를 받고 결재를 하는 등 업무를 봤다. 사무실엔 나오지 않았지만 회원사 방문 같은 필요한 일은 다 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어 금요일 오후엔 출근해 임원회의까지 주재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재택근무인데, 언론에서 ‘갈등설’ ‘태업설’ 등을 보도하며 논란이 된 것뿐이다.

사무국과의 갈등

경총 관계자=취임 후 사무국 임직원들이 힘들어했다. 명확한 의사 결정을 못 하고 각종 검토안과 서류 작성 지시를 거듭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애를 먹었다. 직원을 심하게 질책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직의 특성이나 불가피한 관행에 대한 이해도 아쉬웠다. 4월 하순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사건 개입 혐의로 경총 사무실에 압수 수색이 들어왔을 때, 놀란 임직원들을 다독이기는커녕 변호사 비용 제공 불가부터 밝혀 내부 사기를 꺾었다. 회장과 역할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모양새도 연출했다. 손 회장 앞에서 "회장은 대외 업무를 담당하고, 인사권 등 내부 결정은 실질적으로 상임부회장 몫”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송 부회장=취임 직후 조직 안정을 위해 전임자의 여비서와 운전기사도 그대로 썼다. 그러나 일을 할수록 사무국이 너무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4년간 김영배 부회장 체제를 거치며 회원사가 뒤로 밀려나고 사무국 중심이 돼버렸다. 그래서 취임 한 달 뒤부터 경총의 새 비전 수립을 목표로 다소 박차를 가했다. 안 그러면 (어려움에 빠진) 전경련 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조 와해 모의 사건으로 수사받는 임직원의 변호사 비용을 유예한 것은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정당한 활동으로 판명되면 얼마든지 비용을 댈 수 있다. 회장 역할 침범 주장도 터무니없다. 취임 전 손 회장과 1시간가량 면담하면서 조직 운영 철학과 노사관 등에 대해 동의를 구했다.

경제단체 상임부회장은 사기업으로 치면 전문경영인 격이다. 이런 자리가 조직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양새는 유례없다. 현 정부의 친노동 기조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장면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5월 경총은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라는 경고를 들었다. 이 경고가 경총 지도부 교체의 직·간접적 계기가 됐다. 손경식 회장은 올 3월 취임하면서 "노동계와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 전문가’라는 송영중 부회장이 영입된 것도 달라진 노사 지형 속에서 경총의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고민한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찮다. 사용자 이익 도모라는 단체 본연의 임무를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랫동안 쌓인 조직 내부의 논리와 새로운 변화 요구가 부딪치고 있다. 최근 경총은 주 52시간 시행을 앞두고 ‘6개월 계도 기간’ 건의가 받아들여지면서 모처럼 고무된 분위기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 분위기 속에서 과거 방식대로만 노사 문제에 접근할 경우, 경총의 위상은 다시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