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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알 수도 있는 사람’ 지우는 기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50)

조직을 떠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하기 따라선 제법 달콤한 점도 있다. [중앙포토]

조직을 떠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하기 따라선 제법 달콤한 점도 있다. [중앙포토]

거의 모든 세상사가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직을 떠난다는 것 역시 그렇다. 아쉬운 점이 적지 않지만 생각하기 따라선 제법 달콤한 점도 있다. 이를테면 시간이나 실적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경쟁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은 의외로 큰 장점이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음먹기 따라서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니 퇴직자로선 꽤 매력적이다.

내키지 않은 만남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반백수 생활의 미덕 중 하나다. 직장생활에선 부득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내 경우야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긴 했지만, 사이코패스 같은 상사를 견뎌야 하기도 했고, 멍청하거나 이기적인 동료와 손잡아야 할 때도 있었다.

바깥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일로 어우러지니 내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눈이 벌건 사람, 다른 경우라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저열한 인물에게도 웃는 낯을 보여야 했다.

단지 나보다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그랬지만 조직을 떠나니 그럴 일이 아예 없다. 작은 혹은 잠시의 불편만 참으면 가능하다.

앞에선 웃지만 뒤에선 비수가 난무했던 직장 

예전에 다니던 한 직장은 '아군'과 '적군'이 분명히 구분되었던 반면, 다른 한 곳은 앞에선 예의바르고 다정했지만 뒤에선 '비수'가 난무했다. [중앙포토]

예전에 다니던 한 직장은 '아군'과 '적군'이 분명히 구분되었던 반면, 다른 한 곳은 앞에선 예의바르고 다정했지만 뒤에선 '비수'가 난무했다. [중앙포토]

예전 다니던 직장-잠시라도 월급을 받았던 곳이 여섯 군데나 되니 행여 오해 마시라-중 대조되는 인간관계를 보인 곳이 있다. 한 곳은 ‘아군’과 ‘적군’이 구분이 뚜렷했다. 같은 부원이라도 연중 몇 번 있는 회식 아니면 점심도 함께하지 않을 정도였다. 복장마저 정장 파와 평상복 파로 구별됐다.

다른 한 곳은 ‘예의 바른’ 곳이었다. 모든 이가 모든 이에게 웃고, 다정했다. 하지만 뒤에선 ‘비수’가 난무했다. 함께 나눴던 험담이 상사와 회사에 흘러 들어가고 누군가는 인사철엔 남몰래 인사권자 집을 찾았다는 소문이 무성한 동네였다.

남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귀가 얇은 나로선 전자가 적응하기 쉬웠다. ‘적군’은 피하거나 이야기를 섞지 않으면 되었으니까. 퇴직 후엔 이런 판단을 스스로 하고 처신할 수 있으니 속 편하다.

며칠 전 페이스북을 보다 보니 친절하게 함께 아는 친구 숫자까지 넣어 ‘알 수도 있는 사람’의 얼굴 사진이 주르륵 떴다. 그중엔 몇십 명의 ‘친구’를 공유한다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그 정도면 꽤 오래, 아니면 같은 ‘동네’에서 놀았다는 이야기지만 가차 없이 지웠다. 날 해코지한 일은 없지만, 조직 일이 아니라면 절대 어울리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으니까.

이게 퇴직자의 소심한 복수 아니면 소소한 재미 아닐까. 물론 ‘예의 바른’ 나는 어쩌다 길 가다 문제의 인물을 만나면 벙긋 웃으며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하겠지만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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