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슬픔 상징적 처리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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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위적 실험양식을 선보이는 일본극단 덴케이게키 조의『물의 정거장』이 8∼11일 현대토아트 홀에서 공연돼 주목을 끌었다.
86년 첫 번 째로 내한한 일본극단 스즈키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는 이 극단은 일본 현대극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연극계의 관심을 끌었었다.
덴케이게키 조 극단을 이끌고 있는 극작가경 연출가「오토·쇼고」씨가 직접 제작한『물의 정거장』은 일체의 대사가 생략된 일종의 무언극.
무대중앙에는 수도꼭지가 고장이 나서 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수도가 설치돼 있고 그 오른쪽 뒤로 쓰레기더미가 있는 것이 무대장치의 전부다.
바구니를 든 소녀, 양산을 든 여인, 라디오카세트를 든 사내 ,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부, 가방을 든 부부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이 수도 가를 지나다 차례로 멈춰 서서 그들 생활의 일부를 열어 보이곤 한다.
2m의 거리를 5분이나 걸려 지나갈 정도의 느린 동작은 차례로 나타나는 등장인물에 의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짐으로써 삶의 흘러가는 과정 속에 우리 모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뿐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연극의 전편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슬픔이다. 행복했던 지난날을 반추하는 여인도, 사랑하는 남녀가 나누는 성애도, 그들의 느린 동작에 실려 슬픔으로 내보여진다.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짐을 메거나 가방을 들거나하고 있는데, 우리네 인생은 어떤 것이든 고달플 수밖에 없다는 중압감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돋보인다.
81년 일본 동경 덴케이게키조 공방에서 초연, 83년 폴란드·벨기에·프랑스 등 세계무대로 진출하여 지금까지 1백60여 회나 공연된 『물의 정거장』은 인간의 본질적 감성을 슬픔으로 파악, 이를 한편의 시로 그려낸 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2시간20분간의 공연은 관객들을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지리하게 한」일면도 없지 않아 보다 축약된 작품 구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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