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훈의 러시아 통신] 멕시코 이긴 건 파울·경고뿐 … 20년 후퇴한 한국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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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수비 불안과 기술, 조직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멕시코에 2-1로 졌다. 후반 21분 멕시코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오른쪽)에게 추가골을 내준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중앙수비수 장현수. [AP=연합뉴스]

두 경기. 그리고 2패.

또다시 주저앉은 월드컵 대표팀 #멕시코와 2차전 1-2로 아깝게 져 #스피드·기술·조직력 모두 열세 #독일에 2골 이상 이겨야 16강 희망

한국축구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받아든 초라한 성적표다. 한국은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 1-2로 졌다. 후반 추가 시간에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이 한 골을 터뜨렸지만 앞서 허용한 2골을 따라잡지 못했다. 지난 18일 스웨덴에 0-1로 진 데 이어 또다시 패배를 추가했다. 승점 0. F조 최하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5위 멕시코는 예상대로 강했다. 선수 구성은 물론 스피드, 기술, 조직력, 전술 적응력, 체력 등 모든 방면에서 57위 한국을 압도했다. 경기력의 차이를 좁힐 전술적 승부수를 기대했는데, 특별한 게 없었다. 멕시코전을 앞두고 ‘기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실제로 그것 하나만 확실히 보여줬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과격한 파울로 멕시코 선수들을 그라운드 이곳저곳에 쓰러뜨렸다. 멕시코전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상대를 압도한 지표는 파울 수(24-7)와 경고 수(4-0)뿐이다.

경기가 끝난 뒤 로스토프 아레나를 빠져나오는데, 기분 좋게 취한 서너 명의 멕시코 팬들이 다가오더니 “한국의 7번(손흥민)은 좋은 선수야. 뛰어난 공격수가 있으니 한국도 다음 월드컵에서 잘할 수 있어. 물론, 그때는 멕시코를 만나지 않아야겠지”라며 격려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건넸다.

한국은 이날도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노출했다. 전반 26분 핸드볼 파울로 허용한 페널티킥 선제 실점도, 후반 21분 역습 수비 상황에서 내준 추가 실점도 수비 조직력 부재의 증거였다. 상대가 위험지역에 파고 들어오면 공과 사람에 대해 각각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약속된 움직임이 필요한데, 우리 수비진은 그저 우왕좌왕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게 없다. 월드컵 본선 개막 이후에야 포백 수비라인 구성이 마무리되었으니. ‘수비 조직력을 다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기본 원칙을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검증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부분도 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처절하게 무너진 스웨덴전과 달리 멕시코전에서는 선수들의 투지를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후반에 두 번째 골을 내주기 전까지 우리 선수들은 꽤 의욕적이었다. 손흥민·황희찬(잘츠부르크)·문선민(인천)의 ‘스피드 3총사’를 앞세운 역습 공격이 가끔 먹혀들면서 박빙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우리 선수들은 90분간 총 99㎞를 뛰어 멕시코(97㎞)를 근소하게 앞섰다. 손흥민의 후반 추가시간 만회 골로 ‘막판 집중력’도 입증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뚜껑을 연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쟁력은 16강과는 거리가 먼 수준임이 드러났다. 약팀이 강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특징적이고, 확실한 무기 한 가지쯤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 축구는 너무 정직하고 단순했다. 아시아권에서 만날 때마다 짜증을 유발하는 이란의 ‘늪 축구’가 이번 대회에선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연패를 거듭하며 한국축구의 시계는 2002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리그 초반 두 경기를 모두 진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첫 경기는 지지 않는다’는 전통을 만들어내며 승점 또는 승리를 쌓았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토고를 상대로 1승을 거뒀고,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는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는 승리는 없었지만, 러시아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해 체면치레를 했다.

신태용호는 아직 한 경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승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FIFA 랭킹 1위이자 지난 대회 우승팀 독일이다. ‘3전 전패만 면했으면 좋겠다’는 축구 팬들의 자조 섞인 탄식은 1990년대 한국 축구 분위기와 너무 닮았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자연스럽게 ‘16강’을 부르짖지만, 솔직히 말해 요즘 우리는 ‘1승’에 더 목말라 있다.

공교롭게도 3차전 상대인 독일이 우리에게 16강 진출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줬다. 독일은 24일 스웨덴과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의 결승골을 앞세워 2-1로 이겨 대회 첫 승을 거뒀다. 두 경기씩 치른 결과 멕시코가 2승, 독일과 스웨덴이 1승1패, 한국이 2패다. 마지막 3차전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에 이기고, 우리가 독일을 두 골 차 이상으로 꺾으면 ‘기적’이 실현된다. 멕시코가 3승, 나머지 세 팀이 1승2패로 동률인 상황에서 한국이 골득실차로 앞서 조 2위에 오를 수 있다. 만약 멕시코가 스웨덴을 두 골 차 이상으로 잡아주면, 독일을 1-0으로 이겨도 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경기 일정(6/25)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 계산은 여기까지다. 독일이 ‘산소 호흡기’를 달아준 덕분에 한국은 3차전까지 희망의 끈을 붙잡고 가게 됐지만, 준비가 부족한 우리에게 ‘16강’은 막연한 목표이자 신기루에 불과할지 모른다. 포지션별 경쟁력 확충에 대한 고민 없이 손흥민·기성용(스완지시티) 등 걸출한 선수 한두 명에 의존해 대표팀을 이끌어 가는 낡은 방식으로는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축구 시계를 고칠 수 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