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성공을 낳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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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 진찰실엔 불행의 딱지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슬프고 우울한 얼굴이다. 불행의 사연은 많지만 그 중에도 남녀관계가 역시 제일 흔하고 심각하다. 뭐니뭐니 해도 실연만큼 괴로운 일도 달리 없을 것이다. 짝사랑의 애달픈 사연은 또 얼마나 가슴아픈가. 그리고 불행한 결혼도 크나큰 비극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온 세상이 텅 빈 듯한 공허감, 그리고 수많은 밤을 아픔으로 지새야 한다.
그 아픔을 못 견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자포자기 한 채 술로, 도박으로 막가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인간불신 증상에 걸리기도 하고, 이성공포 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복수심에 차서 이성에의 공격으로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등지고 표연히 사라지는 사람,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설령 마음의 정리가 된다해도 그 상처는 오래 가슴에 머무른다.
여하튼 이런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위인은 이점에서 다르다. 이 불행을 계기로 큰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물방앗간의 처녀』,『백조의 노래』등 주옥같은「슈베르트」의 가곡은 짝사랑의 애달픈 사연이 낳은 명작들이다. 너무나 가난하고 내성적이어서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노래로 마음을 달랜 것이다. 생애 중 단 한번의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게 아쉽지만 그의 노래는 영원히 살아있다.
수많은 시인·예술가·작가 등이 실연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아내의 극성스런 작품간섭에도「마크·트웨인」의 해학은 더욱 빛났다.
「베르디」의『나부코』는 두 아이와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 빚어졌다.「드뷔시」의『바다』,「쇼팽」의『이별의 왈츠』,「고흐」의 원색적인 그림,「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수많은 명작들은 그들의 아픔·실연 속에서 만들어졌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악처 덕분이라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불행한 결혼이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게 한 예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은 집에 재미를 못 붙이면 밖에서 하는 일이나마 즐겨해야 한다. 이게 보상심리다. 어느 한쪽이라도 만족해야 구멍난 한쪽을 메워 정신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이 싫어 죽어라 밖에서 일만 하다보니 어느새 돈도 벌고 출세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일 중독증 환자처럼 밤늦게까지 직장에 있어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딱하긴 하지만 그래서 사회적 성공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위안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이, 사랑스런 아내와의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밤늦게까지 일한답시고 죽치고 앉아있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빨리 일을 끝내고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여느 가장처럼 가족들과의 즐거운 저녁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거기서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가정적으로 불행한 이들은 일하는데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불행이 성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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