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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우울증 치료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21일 오후 분당 오리역 옆에 있는 성남농협 하나로마트가 주부들로 떠들썩했다. 이날은 박상훈(48)씨 노래강좌가 있는 금요일이다.오후 2시 200여평 규모의 하나로마트 문화센터는 30대~60대 주부들로 가득찼다.300여명 수강생 중 남자는 5명뿐이다.곧바로 노래 강습이 시작했다.

먼저 지난주 배운 노래부터 복습했다.

"당당하게 뻔스럽게 보내는 거야.사랑하면서 떠나겠다니 그 무슨 신파극이야.더 이상 미련은 없어.다시는 연락하지마."
테크노댄스풍의 '신 미아리고개'(노래 채수정)가 울려 퍼지자 흥에 겨워 좌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급기야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주부들이 속출했다.뒤에서 겸연쩍게 앉아있던 60대 남성들도 자리서 일어나 어깨춤을 췄다.문화센터가 순식간에 신바람 공간으로 돌변했다.

박씨는 올해로 가요강사 생활 20년째를 맞는다.노래강사 원조인 구지윤(62.여)씨를 이어 곧바로 시작했다. 박씨는 구씨를 스승으로 깍듯이 대한다.그런 박씨를 구씨도 끔찍히 아낀다.구씨는 "내가 1983년 본격적으로 노래강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많은 후배들이 뒤를 이었지만 박씨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했다.

박씨의 노래 경력은 화려하다.그는 1976년 탤런트 임예진씨보다 1년 일찍 안양예고를 졸업했다.노래를 잘하는 박씨는 2년후 그룹 '박상훈과 야생마'를 조직해 활동했다.작곡 재능이 있는 그는 아세아레코드사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했다.81년 작곡한 TV드라마 '성난눈동자'주제가는 이은하씨가 부르기도 했다.영화음악도 여럿 작곡했다.그 후 노래강사로 '데뷔'했다.97년엔 'ZING코리아'레코드사를 설립해 최석준씨의 인기곡 '꽃을 든 남자'도 기획.제작했다.

이런 다재다능한 박씨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역할은 노래강사다. 박씨는 "노래는 위대하다"고 말했다.그는 "40,50대 주부들이 많이 앓는 우울증을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노래만한 게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일주일 13군데를 다니며 노래를 가르친다.일산에선 장흥농협(월요일 오후3시),강남에선 신세계백화점(금요일 오전 11시30분)과 롯데백화점(목요일 오전 11시30분)에서 노래강좌를 연다.

그는 2003년 사단법인 '한국가요강사협회'(www.kosia.co.kr) 회장이다.초대회장은 구지윤씨였다.박씨는 "전국에서 노래강사로 활동 중인 사람은 1500여명(90%이상 여자)으로 추산된다"며 "우리 협회에 등록한 강사는 그 절반인 800명 수준"이라고 말했다.지난 15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전국 총회를 열었다.

박씨는 3월부터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가요강사 지도자반에서 강의하고 있다.대학 관계자는 "박씨의 노래지도 경력을 감안해 첫 개설된 강좌 강의를 맡겼다"고 말했다.

박씨 등 노래강사들은 트롯트 중심으로 모든 장르에서 선곡해 가르친다.노래교실에서 뒤늦게 히트하는 노래들도 있다.박영일씨가 부른 슬로우 고고풍의 '축제'가 그 중 하나다.

"아득히 먼 훗날 웃으며 말할까.(중략)푸르른 날에 내리는 비같은 내 젊은 날의 축제여…."

"무대에서 노래부르다 죽고싶다"는 박씨의 축제는 연일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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