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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멕시코의 히딩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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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스페인을 상대로 ‘신의 경지’를 보여준 포르투갈 호날두만큼이나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이가 있다. 바로 세계 최강 독일을 무너뜨린 멕시코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콜롬비아)이다. 적잖은 전문가가 한국이 속한 ‘죽음의 조’에서 멕시코가 독일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수훈을 치차리토의 공격이나 오초아의 선방이 아니라 이 천재 감독에게 돌릴 정도다. 겨우 한 경기를 마쳤을 뿐인데 벌써부터 오소리오를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네덜란드)에 빗대는 사람도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오소리오는 여러모로 히딩크와 닮았다. 선수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히딩크처럼 그 역시 부상 탓에 26세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선 맡는 팀마다 드라마 같은 결과를 이끌어낸 ‘히딩크 매직’처럼 그 역시 미국 뉴욕 레드불스 우승과 콜롬비아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3연속 우승을 이끌며 ‘오소리오 매직’을 보여줬다. “(강팀을 상대로) 패배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두 감독이 겪은 수난사도 비슷하다. 한국팀 감독 부임 후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0-5로 참패해 경질론에 시달렸던 히딩크처럼 오소리오 역시 2016년 칠레에 0-7로 참패한 후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사임 여론을 견뎌야 했다.

히딩크는 2002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4강이라는 결과로 보여줬다. 이젠 오소리오 차례다. “결승이 목표”라는 오소리오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지만 월드컵에 진출한 팀은 세계 최고가 될 꿈을 꿀 권리가 있다”고 했다. 허풍이 아니다. 그는 지난달 미디어데이에서 “올 초 휴가 기간에 네덜란드로 히딩크를 찾아 한국팀 전술과 훈련방식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며 최약체로 꼽히는 상대에 대해서조차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파악했는지를 드러냈다.

한국은 어떨까. 신태용 감독 발언만 보면 실망스럽다. 그는 첫 경기를 앞두고 “스웨덴에 올인하고 있고 멕시코는 스웨덴전 후에, 독일은 1, 2차전을 끝내고 분석할 생각으로 제쳐놓았다”고 했다. 막상 스웨덴전을 보니 상대는 물론 우리 팀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안 된 게 아닌가 싶다.

일찍이 손자는 ‘적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적을 모른 채 나만 안다면 이길 확률이 반반,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면 반드시 패한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고도 했다. 멕시코와 우리가 각각 어떤 팀인지는 남은 두 경기가 말해 줄 것이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