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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강국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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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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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가 독재국가보다 축구를 잘한다.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주 러시아 월드컵 참가국을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이 단체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자유지수 상위권 나라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높다는 게 근거다. 실제로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오른 32개국 중 프리덤 하우스가 ‘자유롭지 않은 나라(not free)’로 꼽은 나라는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이란 4개국뿐이다. 러시아는 푸틴의 독재로 악명 높고 다른 세 나라도 인권 탄압으로 도마에 올라 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가 사우디에 5-0 대승을 거뒀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러시아 자유지수가 100점 만점에 20점인데, 사우디는 그보다도 낮은 7점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최하위였다. 우루과이(98점)가 이집트(26점)를 이긴 것도, 인구 33만 명의 소국 아이슬란드(95점)가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83점)와 비기는 파란을 일으킨 것도 잘 맞아떨어진다. 물론 독일(94점)이 멕시코(62점)에 지긴 했다.

민주주의가 왜 축구에 유리할까. 프리덤 하우스는 개방적이고 규칙에 기반을 둔 경쟁과 최소한의 국가 통제 덕분이라고 했다. 반면 독재국가는 권력의 무절제한 집중과 자원 배분의 왜곡으로 정치와 경제라는 경기장이 모두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축구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축구 강대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축구굴기(蹴球崛起)’가 쉽지 않은 이유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중국·러시아 같은 독재국가도 올림픽은 잘할 수 있다. 육상종목 중심으로 집중 훈련하면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에는 창의성과 세련된 안목이 필요하다. 올림픽 강국이었던 과거 동독이 축구만큼은 서독의 적수가 못 됐던 이유다. 월드컵이 올림픽보다 더 민주적이다. 독재국의 월드컵 우승은 1978년 아르헨티나 군사정부가 마지막이었다.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력과 축구의 인기가 축구 강국의 잠재력을 결정한다. 우루과이같이 유소년 축구의 저변이 탄탄하거나, 아프리카처럼 유럽 축구라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실력보다 좋은 성적도 낼 수 있다. 민주국가 미국이 잠재력보다 실적이 나쁜 것은 선수 연봉에 상한을 설정한 프로구단의 카르텔 탓이란다.

골드만삭스는 브라질을 우승 후보로 꼽으면서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3전 전패를 예측했다. 프리덤 하우스의 한국 자유지수는 84점인데 스웨덴은 100점 만점이다. 우리가 믿을 건 ‘공은 둥글다’는 사실뿐이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