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표 쓰고 묻지마 창업? 몇 년은 준비하고 뛰어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권오용 대표는 회사 이름인 에이아이플러스(AIPLUS, Agriculture plus IoT)처럼 농업에 사물인터넷을 더해 씨앗만 심으면 알아서 채소를 재배하는 ‘플랜트 박스’를 개발했다. 그는 ’옥상에서 불편하게 채소를 기르는 부모를 보며 집 안에서 수월하게 재배할 방법을 고민하다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권오용 대표는 회사 이름인 에이아이플러스(AIPLUS, Agriculture plus IoT)처럼 농업에 사물인터넷을 더해 씨앗만 심으면 알아서 채소를 재배하는 ‘플랜트 박스’를 개발했다. 그는 ’옥상에서 불편하게 채소를 기르는 부모를 보며 집 안에서 수월하게 재배할 방법을 고민하다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직장인이라면 가슴 깊숙이 넣어둔 사표가 있게 마련이다. 문득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에 대한 회의가 들 때면 가슴 깊이 넣어뒀던 사표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권오용 ‘에이아이플러스’ 대표 #삼성전자 한 곳서만 14년간 근무 #쳇바퀴 직장 생활에 싫증 인생 도박 #매일 ‘나를 위한 시간’ 만들며 고민 #IoT 활용 가정용 채소재배기 개발 #사내 창업 프로그램 관문 통과해 #“좋아하는 일 해야 새로운 길 열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가정용 채소 재배기를 개발한 ‘에이아이플러스’(AIPlus, Agriculture plus IoT) 권오용(41) 대표도 그랬다.

삼성전자에 14년간 몸담았던 권 대표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지난달 말 사표를 냈다. 권 대표는 “입사 8년 차 때 문득 ‘이렇게 짜인 데로만 살아서는 내 인생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뻔한 남의 일’ 대신 ‘주도적인 내 일’을 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사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C랩을 운영하고 있다. 공모전을 통해 임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크게 4단계에 걸쳐 선별한 후 연평균 30여 건에 대해 1년간 연구·개발(R&D)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창업 지원에 나섰고 현재 34개의 스타트업이 독립했다. 지분 투자 방식으로 초기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데 지분율은 스타트업마다 다르지만 20%를 넘지 않는다.

권 대표는 3전 4기로 지난해 C랩 수행과제로 당첨됐다. ‘아파트 층간 소음 없애는 기기’, ‘고효율, 저오염 스토브’ 등으로 도전했다가 1단계도 통과하지 못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IoT를 활용한 가정용 채소재배기인 ‘플랜트 박스’는 당시 선행개발팀이었던 최선묵(40) 에이아이플러스 공동대표와 함께 준비했다.

플랜트 박스의 채소 재배 과정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에이아이플러스]

플랜트 박스의 채소 재배 과정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에이아이플러스]

소형 냉장고 크기의 플랜트 박스는 채소를 수경 재배 방식으로 알아서 키운다. 작은 스마트 캡슐에 원하는 채소의 씨앗을 심으면 플랜트 박스가 물의 양은 물론 햇빛 역할을 하는 식물생장용 LED의 밝기, 온도, 습도, 공기 질까지 스스로 조절한다. 재배 진행 과정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권 대표는 “농약 한 방울 치지 않은 채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며 “이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LED 등 첨단 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팜 시장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인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2016년 90억 달러(약 9조8919억원) 수준이었던 세계 스마트팜 시장은 연평균 13% 성장해 2022년 184억 달러(약 20조407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권 대표가 플랜트 박스에 활용한 식물생장용 LED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는 신기술이지만, 대기업도 관심을 보인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인 IHS에 따르면 식물생장용 LED 시장 규모는 지난해 5000만 달러(약 554억원)에서 올해 7000만 달러(약 776억원)로 34% 성장했다.

식물생장용 LED는 햇빛이 들지 않는 공간에서 자라는 식물의 부족한 태양광을 보강해주는 새로운 기술이다. 광합성에 필요한 단파장만 이용하기 때문에 재배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공간이나 날씨 제약 없이 식물을 연중 재배할 수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식물 성장을 촉진하는 660㎚(1억분의 1m) 파장의 ‘LH351B레드’를 출시했다.

권 대표는 “수질 오염, 미세먼지 등 환경 오염이 연일 이슈가 되고 있고 그만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욕구도 커지고 있다”며 “우선 30대 이상 프리미엄 1인 가구, 100만명에 이르는 채식주의자,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 많은 주부 등이 우리 회사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2년 안에 제품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권 대표는 “C랩을 통해 창업한 스타트업이 세계적인 박람회 등에서 기술을 인정받으며 저마다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며 “에이아이플러스는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까지 고려해 추운 러시아나, 더운 중동에서도 똑같은 품질의 채소가 재배될 수 있도록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상용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6년 C랩을 통해 창업한 ‘망고슬래브’는 접착식 메모지를 출력하는 소형 프린터를 개발해 1년 만에 양산에 성공했다.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판매에 나섰고 지난해 연 매출 80억원을 달성했다.

비슷한 시기 산업 건축용 진공 단열 패널을 개발해 창업한 ‘에임트’도 지난해 독일에서 40억원을 유치했다.

권 대표는 직장인들에게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고, 좋아하는 일은 오랜 시간 지속하게 되고, 오래 하다 보면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게 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대부분 직장인이 부모, 남편(아내), 자식 등 너무 많은 역할을 한꺼번에 하며 살아간다”며 “하루 24시간 중에 단 30분이라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쌓이면 큰 변화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C랩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 확산을 위해 2012년 도입한 사내 벤처 프로그램. 사내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아이디어는 1년간 전담으로 연구개발(R&D)할 수 있다. 성과가 좋은 프로젝트는 각 사업부문으로 옮겨 후속 개발을 진행하거나, 스타트업을 차릴 수 있다. 현재까지 204개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34개 프로젝트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