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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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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웃음에는 은퇴가 없다"고 말한 이는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다. '막둥이'란 별명 그대로 세월이 가도 그의 나이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본인 말을 빌리면 "그날 기분따라 나이가 널을 뛴다". "올해 몇이세요" 물으면 "마흔아홉요" 했다가 "언제 적 구봉선데요"하면 "사실은 쉰아홉이에요"하고 슬쩍 눙친다. 데뷔 60돌을 넘긴 그이지만 웃고 살아 그런지 얼굴만큼은 여든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웃으면 복이 와요'로 한길을 걸어온 그가 최고로 치는 코미디는'웃다 보면 눈 꼬리에 눈물 핑 맺히는' 페이소스 짙은 희극이다. 아름다움 속에 깃들어 있는 아픔이기도 하고, 고단함 속에 피어나는 인간애라 할 수도 있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죽어가는 순간에 그가 남긴 마지막 대사가 그랬다. "나 죽으면 너희를 누가 웃기니?"

웃음의 효능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한결같이 꼽는 생리 효과는 자연 진통이다. 웃음은 한마디로 좋은 천연약이라는 것이다. 웃으면 혈액순환이 잘돼 몸에서 힘이 솟고 스트레스와 긴장은 낮아진다. 근육을 흔들어 살까지 빠진다. 반면 병에 대한 면역력과 저항력은 높아진다. 공짜로 누리는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웃으면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도 크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에는 웃음이 대화의 통로요, 가슴을 여는 열쇠라는 경험이 녹아 있다. 침울한 영화를 함께 본 사람보다 배꼽 빠지게 웃기는 영화를 같이 본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느낀다는 실험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어린아이일 때는 하루에 수백 번 웃다가 어른이 되면 고작 열댓 번 웃는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잘 웃는 어른의 영혼은 어린아이의 영혼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20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국제 노인 건강 및 장수 학술대회'는 '오래 살고 싶으면 웃어라'를 결론으로 내놨다. 호주 플린더스대학 차메인 파워 박사 연구팀이 100살 넘게 사는 장수 노인 24명을 골라 조사했더니 만사를 웃음으로 넘기는 느긋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사원으로 참가한 이는 "장수 노인과 함께 있으면 우리도 즐거워진다"고 털어놨다.

하루도 편할 날 없는 나라 형편을 돌아보니, 역시 웃는 얼굴보다 화난 얼굴이 더 많았던 듯싶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