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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지금이 천막 이벤트 할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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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18일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서울 도심 콘크리트 바닥에 천막이 쳐졌다. 이른바 ‘현장 노동청’이다. 청계천 광장에 들어섰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청식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제도개편 등 현안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정책을 보완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정책을 홍보하고 제안도 받겠다는 뜻이다. 대구 동성로를 비롯해 인파가 붐비는 전국 10곳에 이런 현장 노동청이 들어섰다. 한 시민은 “뙤약볕 아래 천막 청사를 만들면 정책이 제대로 나오고, 고용 사정도 나아질까”라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내 눈엔 시위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개청식 주변은 ‘노동자에게 표 받고 재벌 편을 들고 있나?’ ‘줬다 뺏는 최저임금 삭감법’ ‘김영주 장관 퇴진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푯말과 앞 조끼를 입은 시위 인파로 둘러싸였다. 이날 고용부가 보도자료로 홍보한 첫 ‘제안’은 ‘고발’이었다. 모 회사 노조가 낸 사업주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다. 정부 의도와 사뭇 다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서울 청계광장 현장노동청 개청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서울 청계광장 현장노동청 개청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장을 중시하겠다는 뜻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천막 노동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울고용청이 있다. 의견 개진이 더 빠르고 손쉬운 정부 홈페이지도 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제가 이를 활용한 사례다. 한데 굳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 인파가 북적이는 곳에 천막을 치고 정책 홍보와 제안 접수에 나선 이유가 뭘까. 한 시민은 “이벤트로 눈길 한 번 끌어보겠다는 것 아니냐”며 정부로선 달갑잖은 해석을 했다.

따지고 보면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과 관련된 문제점은 산업현장 곳곳에 차고 넘친다. 이것만 잘 종합해도 국민의 제안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챌 수 있다. 10여 일 뒤면 근로시간이 단축되는데 이제 와서 “시민 제안을 듣겠다”니 납득이 될 리 만무하다.

그나마 고용 참사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성은 기재부에서 나왔다. 일자리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뭘 했을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안정자금을 집행했다. 주 52시간 관련 판례를 정리한 자료집을 내면서 “상당수 기업은 준비가 잘 되고 있다”고 했다. 유연근무제와 같은, 산업현장에서 수없이 제안했던 제도에 대해선 지나치게 과묵하다.

그동안 나온 현장의 목소리를 분석해서 제대로 된 정책 밥상을 차리는 게 정부가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보이기식 이벤트는 작열하는 태양만큼 산업현장을 열병 들게 할지 모른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