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결벽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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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근담에 나오는 격언입니다. 이 말은 건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화장실이 조금만 지저분해도 용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선 그냥 참기 일쑤며 차에 오르기 전 강박적으로 미리 소변을 봅니다. 요조숙녀 타입이지요. 이런 분들은 변비나 과민성 방광 같은 증세가 잘 생깁니다. 변의를 참으니 변비가 되는 것이며 요의가 없는데도 억지로 소변을 누다 보니 방광에 소변이 조금만 차도 이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립니다. 지나친 깔끔함이 오히려 병을 불러온 것입니다.

질 세척이나 좌욕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박적으로 세제나 약물을 이용해 아랫도리를 깨끗하게 씻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요도나 항문에 대소변이 조금이라도 묻어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숙변을 없앤다며 대장 안까지 깨끗하게 씻어내는 장세척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질 세척을 과도하게 하다 보면 질내 정상적으로 존재해야할 유산균이 동시에 죽게 되므로 잡균이 쉽게 침투해 오히려 질 세척을 자주 하는 여성에게 질염이 잘 생길 수 있습니다.

치질 등 항문질환을 위해 좌욕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욕의 목적은 세척이 아닙니다. 따뜻한 물로 환부의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을 가라앉혀주는 것입니다. 비누를 묻힌 때밀이로 항문 주위를 씻는다며 문지르는 치질환자들이 있습니다. 난센스입니다. 오히려 상처가 덧나고 악화합니다. 그냥 가만히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장 세척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근거가 부족해 보입니다. 단지 기분 문제일 뿐 대장에 대변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조물주가 대장을 만든 목적 그대로 사용하자는 것이지요. 항문이나 요도 부위는 샤워시 가볍게 비누 세척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피부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누로 자주 세수를 할수록 당장 기분은 개운하지만 정상적으로 피부에 존재해야할 기름 성분이 다 빠져나가므로 피부는 건조해지고 푸석푸석해집니다. 비누 세수는 한두 번만 하고 나머지 경우엔 그냥 물로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토피피부염 역시 아이들을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키울 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아파트 공부방에 가둬놓고 키우기보다 흙과 나무 등 자연과 피부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게 할수록 덜 걸린다는 것이지요. 건강을 위해 청결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곤란합니다. 세균 하나 없는 무균실에 있는 사람들은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뿐입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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