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도 "문민화 파고"|무단독재 연장에 국민들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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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5년 간의 장기집권에 이어 또다시 8년 간의 재집권을 꾀하고있는 「피노체트」 칠레대통령은 그의 독재정치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직면해 73년 집권이후 최대의 정치적 도전을 받고 있다.
각 군사령관으로 구성된 4인 군사 평의회가 지난달 30일「피노체트」대통령을 오는 10월5일에 있을 대통령선출 국민투표의 단일후보로 내세우면서부터 반 「피노체트」 시위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후보선출에 앞서 「피노체트」대통령은 집권 후 줄곧 계속돼온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1일에는 해외로 추방됐던 반체제인사의 입국을 허용한다고 발표하는 등 선거를 앞둔 회유책을 잇달아 쓰고있다.
그러나 단일후보 지명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3O일 지방곳곳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속출했고 진압과정에서 3명이 총격으로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다음날에는 l6개 재야단체가 연합, 자유선거실시를 요구하며 선거거부운동을 벌였으나 전략을 바꿔 투표에 참가하되 4일 「피노체트」 집권이후 최대규모의 시위에서는 『오는 선거에서 부표를 던지라』 고 호소, 시위대의 호응을 받았다.
이번 투표에서 「피노체트」가 과반수의 찬성표 획득에 실패할 경우에는 오는 90년 복수후보를 내세운 대통령선거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야당세력들은 이번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자신을 충직한 군인으로 신임했던 「아옌데」 전대통령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이래 『이 땅의 풀 한 포기라도 내가 건드리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을 것』 이란 독선적인 통치이념에 입각한 독재정치를 펴왔다.
「아옌데」 정권은 당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계 최초의 공산당정권으로서 주목을 받았었다.
「피노체트」는 정권을 장악한 뒤 무수한 정치적 비판자들을 숙청해 봤다. 이 과정에서 수 천명이 살해당하거나 실종됐고 투옥되거나 국외 망명길에 오른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계속되는 인권탄압으로 「피노체트」 정부는 국내외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아 따돌림을 당했고 심지어 쿠데타를 적극 지지했던 미국정부마저도 국제여론을 의식해 점차적인 민주화압력을 가하지 않을 수 없는 터였다.
이러한 억압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수권능력을 갖춘 야당세력이 성장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야당의 합법적인 투쟁은 87년에 비로소 시작됐고 이전까지 반정부세력들은 군사정권의 헌법자체를 무시, 정당등록 및 국민투표를 거부하면서 자유선거쟁취를 내걸고 직접적인 대 정부투쟁을 벌여왔었다.
「피노체트」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경제불안 등을 내세우며 반체제세력의 욕구분출을 억눌러 왔다. 다른 남미국가들이 심각한 인플레와 낮은 경제성장으로 고심할 때 칠레는 최근 5년간 5%의 경제성장을 보였고 인플레도 10%남짓 유지해 「피노체트」 정권은 이를 대대적인 정권홍보에 이용했으나 야당세력은 20년 전에 비해 생활수준이 나아진 게 없다고 주장한다.
「아옌데」 시절 5백%에 달했던 인플레를 상기시키며『안정이냐, 혼란이냐』 고 묻는「피노체트」에 야당은 『독재냐, 민주화냐』로 응수하고 있다. 승리를 호언하고 있는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세계적으로 일고있는 문민화의 바람이 크든 작든 영향을 줄 것은 틀림없다.<이원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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